北, ‘6.25 인민군’ 어떻게 대우하나?

▲ 3.8선 통해 북한으로 보내지는 인민군포로들

북한은 6.25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혁명의 2세’라고 부르고 있다.

북한이 2세를 내세운 것은 전쟁을 겪으며 계급의식이 높아졌고, ‘적’들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전쟁중 희생자도 많았고, 살아온 사람도 있었고 낙오자도 많았다.

6.25 전쟁을 겪고 북한내부에는 기본계급과 반동계급이 생겨났다. 북한 2세 중에도 제일 알아주는 사람들은 낙동강전투에까지 갔다 온 사람들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60세 이하의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군에 징집되었다. 군대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무기가 모자라 한 개 소대에 소대장만 따발총(소련제 탄창이 둥그런 연발총)을 들고 소대원들은 몽둥이와 칼, 수류탄을 들고 낙동강까지 나갔다고 한다.

낙동강까지 나갔다 살아 들어온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으로 전선과 후방이 갈라지면서 죽고, 포로가 되고, 도주자가 생겨 북한에서 재진격을 준비할 때 군인이 없어 애를 먹었다고 전쟁 참가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낙동강까지 나갔던 사람들은 대우가 아주 높았고, 그 다음이 50년 겨울에 재편성되었던 전쟁 참가자들이다.

참전군인 특급대우, 90년대 이후 노병들 불만

전쟁이 끝나자 낙동강까지 나갔던 군대들은 북한군 장성이 되어 군을 키웠고, 중앙기관의 간부가 되었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소련과 동유럽에 유학가서 기술을 배웠다.

전쟁 중에 전사자가 많았다. 성분을 결정할 때 전사자(전쟁 때 죽은 군인가족), 피살자(피난 가지 못하고 연합군의 점령으로 죽은 사람가족), 피폭자(폭탄에 맞아 죽은 사람가족)들을 핵심계급으로 하고, 전사자 가족일 경우 맏아들은 대학 공부시켜 당 일꾼으로 키우게 했다.

피살자 가족일 경우 법일꾼(검찰, 보위부, 안전부)으로 키웠다. 이런 사람들을 간부로 시켰기에 당시 북한 내부는 굳건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당국은 전사자 자녀들을 만경대혁명학원(항일 빨치산 자녀들만 공부시키던 학교), 남포혁명학원, 새날혁명학원 등에 보내어 맡아 키웠다. 더러는 전재고아로 소련과 동유럽 등 형제국가들에 보내 공부시켰다.

영예군인들은 80년대까지 흑백TV와 녹음기 등 좋은 물건이 나오면 제일 우선순위로 공급했고, 버스나 지하철 등 이용에서도 우대가 좋았다. 특히 훈장을 많이 수여했는데, 공화국영웅, 노력영웅, 국기훈장 1급, 2급, 3급 등을 제정하여 영웅들은 국가에서 공급대상 명단에 넣고 그들에게 매달 식료품과 돈을 공급해주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들어 일을 못하게 되면 국기훈장 1급 수상자는 죽을 때까지 쌀 700g과 돈 120원, 2급 수상자는 쌀 600g과 돈 60원을 공급해주었다.

그러나 이런 사회복지혜택은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김일성이 죽고, 90년대 식량난이 시작되자 훈장가치가 떨어져 영웅이나 1급수상자도 별볼 일 없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지금 북한에는 이런 처우에 대한 노병들의 불만이 크게 누적되어 있다.

█ 관련기사 1 :

[前 인민군 특무상사] 북한군 체력, 싸울 힘도 없다

█ 관련기사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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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진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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