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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간의 6∙17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6자회담 조건부 복귀의사’를 표명하면서 회담 재개 흐름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언은 최근 한∙미 양국이 북한을 회담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나름의 유연성을 발휘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정 장관의 발표에 따르면, 김위원장은 “북한은 6자회담을 포기한 적도 거부한 적도 없다. 다만 미국이 업수이 여겨 자위적 차원에서 맞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것이 확고하면 7월에라도 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이 미국 책임론을 부각시키기 위해 북핵문제에 대한 자가당착(自家撞着)식 해석으로 일관했지만, 이번 만남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김 위원장이 정 장관을 만나 시점까지 거론하며 회담 복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볼때 북한 내부 입장 ‘6자회담 복귀’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 장관, 6자회담 7월재개가 당면 목표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19일 이번 회담을 북핵문제 해결의 유리한 국면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반 장관은 “김위원장이 비록 조건 두고 7월 회담 복귀를 말했지만 이에 신경 쓰지 않고 7월에 재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6자회담 7월 재개를 당면 목표로 제시했다.
미국도 남북관계를 통해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입장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날 반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남측의 노력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힐 차관보가 미국으로 돌아가 이번 회담 결과를 상세히 설명하면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17일 기자들과 만나 “정 장관이 김 위원장을 5시간 만난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남북대화 채널을 통해 복귀 의사를 천명한 것은 흥미롭고 매우 중요한 상황전개”라고 언급했다. 미국은 최근 북한이 긍정적인 신호를 계속 보내오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회담 재개 분위기를 만들어 갈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이번 회담에서도 6자회담 복귀에 조건을 달고 날짜를 확정하지 않은 점 때문에 여전히 북한의 복귀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회담 내용은 진전된 사안 없어
일단 분위기는 북한이 6자회담 복귀로 가닥을 잡아가는 모양새다. 이번 회담 내용을 놓고 보면 그다지 진전된 내용이 없다. 알맹이 없는 호언 장담만 오갔다. 정 장관은 북한 핵 보유 선언 취소를 꺼내지도 못했다.
김 위원장은 ‘핵개발 책임 떠 넘기기’와 ‘비핵화 선언이 유효하다’는 등의 괴변으로 일관했다. 이번 회담에서 정 장관은 김 위원장과 협상을 했다기 보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호의적으로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에 불과했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로 보인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정 장관을 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직접 만난 것 자체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김 위원장은 북핵 관련 남한 정부가 훌륭한 방패막이로서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남북관계 복원을 대외적으로 공식 확인하는 의지를 보여줬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계속 거부하거나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남북관계도 정상화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해 여러 제안을 해온 것도 ‘민족공조’ 공세를 더욱 가속화 하면서도 회담 복귀 기류를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회담 복귀 가능성 높지만 핵 타결 가능성 낮아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對北) 제재를 피해가기 위한 우회전술일 공산이 크다. 북한은 여전히 핵 보유 선언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핵 보유국 대우를 요구했다. 결국 북한이 핵 포기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면 6자회담 복귀도 일시적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 협의를 진행한 후에 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말은 미국에 북한의 선결 조건을 제시하겠다는 의미다. 국제사회가 제기하고 있는 북한 인권문제와 미사일을 포함한 무기 판매 금지 등의 강도 높은 대북 공세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확률이 꽤 높아 보인다. 그러나 회담에서 실질적 성과를 낼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매우 낮다. 이번 6∙17 회담이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 신호를 보낸 것은 분명하다.
반면, 미국책임론을 통한 한∙미 갈등 조장과 대북정책에 대한 남남갈등이 심화되면서 근본적인 북핵 해결에는 오히려 난관이 조성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