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50년대 중국군-주한미군 철수 연계

북한은 6ㆍ25전쟁 직후 한반도에서 미군 등 외국군대를 철수시키기 위해 중국인민지원군의 완전 철수에 주력했다고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교수가 밝혔다.

김일성종합대 박 철 교수는 이 대학 학보(2005.2 발행)에 기고한 논문에서 “정전 후 남조선에 미제침략군과 그 추종국가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북반부(北)에도 중국인민지원군의 기본역량이 남아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북반부에서의 중국인민지원군의 주둔은 저들(미국)의 침략군대와 추종국가 군대를 남조선에 영구 주둔시키려는 미제국주의자들에게 좋은 구실을 줄 수 있었다”며 “외국군대가 있는 한 외세의 침략과 간섭이 근절될 수 없고 전쟁의 위험은 항시적으로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가했던 중국인민지원군 19개 사단 중 일부 병력이 1954년 9월부터 1955년 10월 사이에 철수했지만 기본적인 병력은 남아 있었다.

김일성 주석은 1956년 4월 노동당 제3차 대회 보고에서 “조선문제를 조선사람들끼리 풀기 위해서는 미제침략군대와 중국인민지원군을 포함한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며 우리나라 내정에 대한 다른 나라의 간섭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북과 남에서 중국인민지원군과 미제침략군 및 그 추종국가 군대를 동시에, 그리고 당장 철거시켜야 한다”며 그 방도를 제시했다.

김 주석은 1958년 2월 중국과 지원군 완전 철수 문제를 진지하게 협의할 것을 지시하면서 지원군 철수를 반드시 정전협정의 요구대로 진행하며 이와 관련한 시찰과 감독을 중립국 감독위원회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김 주석의 제안에 따라 북한은 1958년 2월 중순 방북한 중국 정부 대표단과 회담을 갖고 지원군의 완전 철수문제를 협의하고 이를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회담 이후 중국인민지원군은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북한에서 병력을 철수하기 시작, 1958년 3월 15일부터 10월 26일까지 기간에 3단계에 걸쳐 평안북도 신의주를 경유해 완전 철수했다.

한편 남한에 주둔했던 6ㆍ25전쟁 참전국 중 1953년 프랑스ㆍ뉴질랜드ㆍ호주ㆍ필리핀ㆍ남아프리카공화국이 철수했고 이듬해 콜롬비아ㆍ에티오피아ㆍ룩셈부르크, 1955년 태국ㆍ그리스, 1956년 네덜란드ㆍ벨기에ㆍ터키, 1957년 영국이 병력을 철수했다고 이 논문은 밝혔다.

박 교수는 그러나 미군만은 여전히 철수하지 않은 채 오늘까지 남아있다며 이것은 “남조선을 침략적 군사기지와 교두보로 삼고 아시아와 세계 제패를 실현하려는 미제의 침략과 전쟁책동이 얼마나 집요하고 악랄한가를 실증해 준다”고 비난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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