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5월부터 ‘빌 클린턴 前대통령’ 訪北 원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여기자 억류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일단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북한 정식 재판까지 받은 여기자들이 4개월 반 만에 석방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 여기자 2명은 3월 17일 중국 접경지역에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던 도중 북한 국경을 넘어가 경비병에게 붙잡혔다. 이 두 여기자는 미국의 커런트TV 소속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억류 다음날인 18일 평양으로 강제 압송됐다.

4월 24일 북한은 미국 여기자들을 재판에 회부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6월 8일 여기자 두 명은 북한 재판소에서 ‘조선민족적대죄’와 ‘비법국경출입죄’라는 죄목으로 ‘12년간 노동교화형’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았다.

여기자들에 대해 중형이 선고된 후 2개월 간 미국과 북한 사이에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석방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미 국무부는 매번 “여기자 억류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후 미국에 있는 여기자 가족들이 석방 운동에 나섰다. 로라링의 언니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석방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미국정부에 호소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4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지난 5월부터 미국 내에서는 여기자 석방을 위한 ‘대북특사 파견’ 논의가 활발했다. 특사 후보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앨 고어 전 부통령이 거론됐다.

북한은 지난 5월부터 방북특사로 ‘빌 클린턴’을 지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전직 대통령으로 최고위급 인사이자 힐러리 클린턴 현 국무장관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그의 재임시절 미북간 화해무드가 조성된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빌 클린턴의 대북정책이 “북한과 국제사회의 접촉을 유지해 북한이 최악의 정책을 취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으나, 북한의 인권과 핵 확산 등 정권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편, 북한이 미국인을 억류한 사례는 빌 클린턴 정부 시절만 2차례 있었다. 북한은 1996년 11월 압록강을 건너 국경을 넘어온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를 간첩 혐의로 구속 억류했다. 당시 대북 협상에는 빌 리처드슨 미 하원의원이 나섰다.

당시 북한은 헌지커 석방 협상 당시 벌금으로 10만 달러를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인질 몸값은 지불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헌지커의 가택연금에 든 ‘호텔비’ 명목으로 5000달러를 지급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선 1994년 12월에는 주한미군 조종사 보비 홀 준위가 비행 착오로 북한에 착륙해 억류됐다. 이때도 리처드슨 의원이 방북해 북한과 협상을 벌였고 홀 준위는 억류 13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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