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1운동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은 3.1운동에 대해 남한과 사뭇 다른 해석과 평가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서 3월 1일은 공휴일이 아니다.

이는 3.1운동을 계급혁명의 성격을 띤 인민봉기로 규정하는 동시에 발발과 핵심 인물, 실패 원인 등과 관련해 역사왜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3.1운동을 노동자, 농민, 학생이 주체가 되어 일으킨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규정해 ‘3.1인민봉기’로 일컫는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백과사전출판사, 2000년 출간)은 3.1운동에 대해 “나라의 독립을 위해 1919년 3월1일 폭발한 우리 인민의 전민족적 반일봉기”로 규정하면서 그 의미를 세 가지로 꼽고 있다.

즉 ▲조선인민의 열렬한 애국적 투지와 혁명적 정력이 과시됐으며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고 ▲식민지 예속국가 인민들의 민족해방운동 발전에 고무적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또 발발 과정과 핵심 인물에 대해서도 민족대표 33인이 주동이 돼 서울의 탑골공원에서 시발된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발발지를 평양으로, 핵심 인물의 경우도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인 김형직과 연계시키고 있다.

북한은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러시아 10월혁명(1917.10)의 영향을 받아 수십만의 서울시민이 반일투쟁을 시작하여 발생한 것”으로 기술해 왔으나 1980년부터는 평양 장대재에 있던 숭덕여학교에서 수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 학생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양방송은 지난해 3월1일 “역사적인 3.1인민봉기는 평양에서 있은 대중적인 시위투쟁을 첫 봉화로 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며 “이날 평양에서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시며 우리나라 반일 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 선생님께서 몸소 키우신 애국적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이 주동이 되어 수많은 각계 각층 군중이 반일 시위투쟁에 일떠섰다”고 밝혔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도 1983년에 발간한 ‘백과전서’에는 없다가 1999년에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에 “1919년 3.1인민봉기 때 일제를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여학생”이라며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나아가 3.1운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면서 나름대로 그 원인을 내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탁월한 수령의 영도’와 ‘혁명적 당의 지도’가 없어 실패했으며,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민족해방 운동의 지도세력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행동에 대해서도 “철두철미 반민족적이며 반인민적인 배신행동이었으며 일제 강점자들에 대한 비굴한 투항행위였다”고 비난한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를 받아들여 무저항 만세운동을 주도함으로써 3.1운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3.1인민봉기 기념보고회’ 등을 개최하며 나름대로 기념해 왔으나 1990년대 들어 행사의 격을 낮춰 별다른 행사를 갖지 않고 있다.

따라서 공휴일로 지정돼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문.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반외세 투쟁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해 3.1운동 87주년을 맞아 ‘견결한 반외세.자주화 투쟁으로 자주통일의 길을 열어 나가자’는 사설을 게재하고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반대하고 나라와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반미.반일 투쟁을 강력히 벌일 것을 촉구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