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2005년 10월에 시작된 필자의 시대세평(時代細評)은 만으로 5년, 햇수로 6년째이다. 시대세평을 쓰게 된 동기는 현대판 아우슈비츠인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이 가져올 참담한 결과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전자는 도덕적 파탄이고 후자는 정치·경제·이념 및 군사에 걸친 총체적 파탄이다.
수년 전 6자회담 중에 북한이 첫 번째 핵실험을 하였을 때, 필자는 북한이 핵을 통해 한국을 압박·갈취할 것이라고 이 시대세평 어딘가에 쓴 적이 있다. 김정일이 북한의 자원을 쓸어 넣어 만든 핵을 ‘협상’을 통해 팔아버릴 것이라는 한국좌파와 미국의 네오썬(Neo-Sun) 및 부시정부의 희망어린 억측은 김정일 정권의 본질을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였다.
물론 핵을 팔고 개혁개방을 하면 북한은 한국의 지원으로 인민의 삶을 지속적이고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수령(首領)체제를 포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개혁개방과 수령체제는 중·장기적으로 양립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핵을 팔지 않고 다만 팔 의도가 있는 듯이 떠벌리거나, 급할 때 한국을 핵으로 협박하면 김정일은 북한인민의 삶을 개선할 수는 없더라도 수령체제를 유지하고 자식에게도 기쁨조 비밀파티 정도는 보장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국 언론에서 아직도 ‘위원장’이라는 괴이한 호칭을 부쳐주는 김정일은 자신이 마치 이 세계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만, 실은 ‘가늘고 길게 살자’는 속 좁은 삼류 조폭 두목일 뿐이다.
II.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한국의 좌파는 북의 핵개발이 협상용이거나 방어용이지 한국을 위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우리민족끼리’라는 집단망상 때문이다. 이제 바로 이 한국의 좌파들이 북한의 핵위협과 전쟁의 가능성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고 있다.
필자는 이들의 행태에 분노하지는 않는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한국 좌파의 망발에 대한 분노는 그 망상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면 결국 화병(火病)이 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한국 좌파에 대한 정당한 분노는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건강을 갉아먹는 자해행위가 되기 십상이다. 한국 좌파의 비겁한 행태에 대해서는 일단 경멸이 약이다. 까뮈는 시지프스 신화에서 경멸로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은 없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한국 좌파보다 더 주의해야 할 대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의 행태다. 근자에 들어와 중국은 천안함 폭침이건 연평도 포격사건이건 사사건건 북한을 비호하고, 급기야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를 두고 ‘평화적 핵 이용권’이라는 주장을 하고 나왔다. 이란 정부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으로부터 통제받고 있는 관영언론들의 주장과 언어는 이미 합리적 대화나 논쟁의 범주를 넘어섰다. 이런 주장들에 공통적 흐름이 있다면 ‘오로지 힘으로 누르겠다’는 것뿐이다. 한 마디로 ‘살인자와 공모(共謀)하였기 때문에 살인행위도 옹호할 수 있다’는 것이 조선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공모한 한국전쟁에서 맺어진 조중우호(朝中友誼)의 본질이다.
다른 한편 지난 20일 연평도 사격 훈련에 대하여 북한이 도발로 대응하지 않은 것을 미국의 언론들은 ‘중국이 북한을 자제시켰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미행정부 관리들은 ‘북한의 우라늄농축시설 공개와 북한의 호전적 도발에 중국정부가 당혹해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미국 정부의 판단이라면 미국 정부의 북한 담당자들은 무능하거나 현실도피적이거나 아니면 둘 다일 수밖에 없다.
III.
지금까지 중국의 북한 핵개발에 대한 입장은 명백한 ‘반대’였지만, 중국이 북한의 붕괴와 북핵용인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항상 후자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었다. 북한붕괴 시에 수 백만의 북한난민이 북중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와 동북지방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신화였다. 중국은 지금까지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을 묵인하여 왔고, 조장해 왔으며, 이제 북한이 실질적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옹호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진정 막으려 했다면 북한정권에 가할 수 있는 압박수단은 충분히 있었다. 북한정권이 붕괴할 것을 염려해서 북한에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는 것도 널리 퍼진 신화적 궤변에 불과하다.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한다는 것은 ‘망할 것이냐, 핵을 포기할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북한이 선택하라는 것이다. 김정일처럼 오로지 두목 노릇 하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인간에게 이런 압력에 대한 답은 명백하다. 핵을 포기해도 두목 노릇은 계속할 수 있지만, 북한이 붕괴되면 두목 노릇을 계속 할 수 없을 것이라면, 김정일이 이런 양자택일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분명하다. 중국은 이런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북한정권을 복속시키면서, 북한의 핵광기로 미국과 한국·일본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어한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고전적 중국의 외교전술이 이미 등장한지 오래지만 6자회담으로 인해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 북핵을 빌미로 핵무장을 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의 제3차 핵실험과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기로 마음 먹었으며, 패권주의적 태도로 미리 북한핵 옹호의 전주곡을 깔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 연평도 사격훈련에 북한의 자제를 촉구했다면, 그것은 북한과 중국이 한국의 주권행사에 ‘이번에는 도발로 대응할 수 없다’는 차선책을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북한이 도발로 대응하다 초토화되는 것보다는 광견(狂犬)으로서의 북한의 대외 이미지가 상당히 손상되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IV.
미국정부의 관리들이 중국이 연평도 사격훈련에 북한의 자제를 촉구하였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중국이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을 막도록 촉구해 보는 것은 비록 참신한 발상은 아니지만 확인차원에서 해 볼만 하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제3차 핵실험을 반대하고 또 필요하면 솜방망이식 제재에 참가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을 결코 막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내년에 북한은 한국을 핵위협할 것이고 중국은 북한을 옹호할 것이다.
한국은 이제 가능 빠르고 안전한 방법으로 북한정권을 교체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뒷배경을 믿는 북한정권이 한국을 핵으로 위협하는 상황 하에서 ‘수모의 100년’을 견딜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마지노선을 한 해 앞두고 내년에는 남북 간에 격렬한 기(氣)싸움과 김정일 정권의 수많은 도발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군의 연평도 사격훈련이 평양폭격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한 김일성대학 학생들이 결석을 한다거나, 북한의 지배계급의 외화 사재기가 벌어지는 것을 보면, 김정일 정권의 북한 내 프로파간다가 스스로의 체제를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체제의 원심분리는 이미 오래 전에 장마당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북한이 이른바 핵성전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북한정권을 자극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제 생계를 북한정권에 의존하지 않고 있는 북한인민의 체제반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북한에 쏟아 부어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