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대혁명소조’ 회의 29년 만에 개최

1970년대 김정일의 중요한 당 권력지지 기반이었던 ‘3대혁명소조’의 전국 규모 회의가 29년 만에 열렸다. 조선중앙통신은 28일 ‘전국 3대혁명소조 열성자회의’가 전날 평양에서 열렸다고 전했다.


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3대혁명소조 사업에서 일대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는 내용의 ‘노작(勞作)’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노작’은 최고지도자의 저서와 담화 등을 지칭한다.


김정은은 노작을 통해 “3대혁명소조 운동은 김일성·김정일 동지의 영도 밑에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떠밀어가는 위력한 추동력으로 강화발전돼왔다”며 “3대혁명소조원들이 당의 믿음을 간직하고 강성국가 건설 위업 수행에 적극 이바지하라”고 지시했다고 중앙통신이 전했다.


‘3대혁명소조’는 1970년대 초반 후계자였던 김정일의 당 권력장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조직이다. 김일성은 1972년 김정일에게 3대혁명소조 운동 발기를 지시했고, 이후 3대혁명소조는 당시 30세에 불과했던 김정일의 당내 지지기반을 넓여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대혁명소조는 김정일의 권력이 확고해진 80년대를 거쳐 9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으나 이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전국 규모의 회의는 1984년 9월에 마지막으로 열렸다.


북한이 29년 만에 전국 단위의 3대혁명소조 열성자회의를 개최한 것은 당 조직 정비를 통해 체제 안정을 공고화 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최근 전국의 노동당 말단 간부가 참가하는 ‘제4차 전당 당세포비서대회’를 5년 만에 개최한 데 이어 각 시·도 차원의 당세포비서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 회의에는 최영림 내각 총리, 최태복·박도춘 노동당 비서와 각 도·시·군 당 책임일꾼, 전국의 모범적인 3대혁명소조원들이 참석했다.


▶3대혁명소조란?


‘북한판 홍위병’으로 불리는 3대혁명소조는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해나가는 과정에서 당의 ‘친위대’로 조직되었다. 대학 졸업반 학생들과 김일성고급당학교 학생, 대학을 갓 졸업한 기술자와 사무원 등 ‘젊은 피’를 주축으로 구성, 북한 전역의 주요기관, 기업소, 협동농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관과 조직에 20~50명을 파견했다.

형식적인 목적은 사상, 기술, 문화혁명으로 불리는 ‘3대혁명운동’이 제대로 전개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그러나 실제의 목적은 하부 단위의 비리를 캐내서 김정일에게 직보(直報), 김정일 앞에 모든 기관과 조직이 무조건 충성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원들을 “당에서 파견한 특사이자 공개된 암행어사”라고 추켜세우면서 그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맡겼다. 혈기왕성한 소조원들은 전국을 누비며 당 정책에 위반되는 사항을 낱낱이 찾아내 보고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권력기반을 다지면서 3대혁명소조가 오히려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북한은 기본적인 생산자재와 설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에서 지시한 생산목표를 완수하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뇌물을 주고 어떻게든 외부 자재를 끌어들여오거나 결과를 거짓 보고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고 거대한 조직이 된 ‘3대혁명소조’를 계속 운영할 만큼 당자금도 충분하지 못하자 점점 역할이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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