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2.29합의 파기는 김정은의 대형 외교실수

최근 북한에서 나온 소식 가운데 제일 의미있는 내용은 북한 정권이 핵실험을 실시할 계획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점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결정을 외부에 공개적으로 알린 점이다. 이 행동은 북한 지도부가 대외적인 회담의 재개를 희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시그널(신호)로 볼 수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놀랍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나의 세트로 진행한 2006년과 2009년의 전례를 감안해볼 때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전문가들 지난 4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 곧 3차 핵실험이 진행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무렵에 핵실험 준비 징후가 노출됐고 이를 증명하는 위성사진도 공개됐다. 때문에 이러한 예측은 설득력이 더 있어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핵실험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특정 시점에서 이를 취소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 같다.   
 
북한이 핵실험을 취소한 이유를 현 단계에서 파악하기 쉽지 않다. 중국이 강경하게 핵실험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3차 핵실험을 하면 대북지원을 대폭 줄이겠다’고 위협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농축우라늄의 부족이나 기술적 문제 때문에 취소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유가 어찌됐든 간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중요한 신호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실험을 취소는 스스로 결정한 문제였다. 외부 세계에 알려 줄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이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향후 대외적인 회담과 타협을 추구하겠다는 ‘온건한’ 태도 표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희망이 현실화 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신호를 미국이 받아 들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 북한은 회담을 재개해 미국의 지원을 획득하고 싶은 기대가 있겠지만 미국 대선과 2.29 합의 위반이라는 장벽은 생각보다 크다.
 
미국 주류 정치 세력에게 2.29 합의 위반은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신뢰하기 힘든 대상자임을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오바마 정부 들어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2차 핵실험 이후 굳어지기 시작했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2.29합의가 깨지자 절정에 달했다.


국무부를 비롯해 오바마 행정부 내에는 여전히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의 논리는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회담을 모험으로 간주할 것이다. 오바마가 미북회담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 공화당으로부터 당장 ‘무원칙한 유화 정책’이라는 비판을 불러올 것이다. 비판을 무릅쓰고 회담에 나선다 해도 선거 전까지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만한 외교 성과를 만들기 어렵다.


여기에 재정위기와 중동 민주혁명, 그리고 중국 굴기 등의 굵직한 현안에 직면해 있는 오바마 행정부에게 북핵 문제는 해결 방법도 보이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골칫거리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백악관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회담은 득보다 실이 크고 남는 것은 비판뿐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북한 엘리트 계층은 미국을 상대로 교묘한 외교 수단을 발휘했다. 미국에게 상징적인 양보의 대가로 경제 지원을 얻을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그들은 국제정치 흐름을 읽지 못하고 2.29합의를 발로 차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추가 기회를 여태 얻지 못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북한이 유화 신호를 보내든 위협을 가하든 도발을 하든 적어도 내년 초까지 미국과 타협이 이뤄지지기는 불가능하다. 2.29합의 파기는 김정은과 측근들이 저지른 첫 번째 외교 실수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