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2002년 美와 북핵 정상회담 희망”

데이비드 스트로브(55) 미국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APARC) 부소장은 18일 “북한은 2002년 10월 미국과 ‘평양 핵담판’에서 정상회담 희망 의사를 보였지만 관계 경색으로 실현되지 못했다”며 “부시 행정부가 이를 수용했더라면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1기)에서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스트로브 부소장은 8일 동안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이날 귀국에 앞서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정상회담이 이뤄졌더라면 김대중 대통령도 계셨고 당시만해도 북한의 농축 시설의 완공 수준도 현재에 비해 크게 낮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핵문제 해결이나 이에 상응하는 결과도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제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2002년 10월 3∼5일, 제임스 켈리 차관보와 잭 프리처드 국무부 대북교섭담당 대사 등 8명으로 구성된 미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북한 그는 16∼1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켈리 차관보와 ‘핵담판’에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암시하는 ‘폭탄 선언’과 함께 ‘최고 지도자급 회담'(정상회담)을 희망하는 발언에 깜짝 놀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북측의 정상회담 제의를 의외로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당시 부시 행정부 출범 후 ‘악의 축’ 발언 등으로 양국관계가 크게 경색돼 정상회담은 꿈도 꾸지 못할 때인데도 이런 발언을 하는 걸 보고 ‘저렇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를까’라는 생각에 모두 갸우뚱했다”고 설명한 뒤 “워싱턴 귀환 후 정부 내 어느 누구도 정상회담에 대해 언급한 것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고 덧붙였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전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펴낸 ‘전환적 사건’ 제목의 책에도 강석주 제1부상이 켈리 차관보에게 “핵문제는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서 최고 지도부가 결정할 문제다. 북조선과 미국의 최고 지도부가 만나면 단숨에 해결될 수 있다”며 정상회담을 간접 제의했다고 소개돼 있다.


스트로브 부소장은 북측의 ‘정상회담’ 제기 배경에 대해 “북한은 오래 전부터 미ㆍ한 동맹관계를 약화시키거나 미군 철수 유도, 아니면 미군이 남아 있더라도 주둔 효과를 최대한 약화시키기 위해 북한과 전략적 관계를 맺자고 수 차례 제의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2년 김영남 외교부장이나 김용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등 고관들은 아널드 캔터 국무차관 등 미 관리들에게 종종 `북한은 미국과 전략관계를 맺을 용의가 있고 그렇게 되면 미국에 이익이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관리들은 당시 중국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강하고 빨리 발전하고 있는 만큼 미국은 동북아에 또 다른 동맹을 갖는 게 좋다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우리는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스트로브 부소장은 16일 인터뷰에서 “12월 초로 예상되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고위급 회동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고위급 대화 자체가 의미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북한이 당장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만큼 보즈워스 대표가 특별한 제안 없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푸켓에서 행한 발언 맥락의 ‘짧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지난 7월 푸켓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경제지원을 대가로 핵을 폐기하는 협상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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