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10.4선언 이행에 잇단 ‘유화’ 발언 흘려

남북관계의 전환 조건으로 10.4선언의 “철저한”이행만 강조하던 북한 관계자들 입에서 구체적인 경협 사업 항목들에 대해선 재협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들이 잇따라 나와 주목된다.

지난달 방북했던 한 미주 교포는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의 최성익 부회장이 “남한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해외나 다른 데서 할 것이 아니라 북한측에 공식 표명하면 10.4선언의 구체적인 사업들은 남북이 만나서 하나하나 대화로 풀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 부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 이튿날인 지난달 17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해외동포 20여명을 만난 자리에서 특히 “10.4 선언의 56개 합의사항중 40개항이 남북경협에 관한 것이나, 제목만 있고 구체적 내용이 기재돼 있지 않다”며 “세부적인 사항은 만나서 얘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포는 당시 북한측의 허가를 받아 최 부회장의 발언 내용을 녹화해 가져왔다며 이를 남한 관계기관에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최 부회장은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책임참사와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초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한 리종혁 통일전선부 부부장도 방북한 데이비드 앨튼 영국 상원의원 일행을 면담한 자리에서 6.15와 10.4선언의 존중.이행을 남북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도 선언의 “일부 조항은 이행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고 앨튼 의원측이 방북 보고서에서 밝혔다.

최 부회장과 리종혁 부부장의 발언은 10.4선언의 이행을 위해선 남북 당국이 만나 협의하는 과정에서 일부 조항에 대한 재검토나 수정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명박 정부는 10.4선언에 대해 재정부담 등을 이유로 ‘전면’ 이행하는 것은 어렵지만 북한과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달 17일엔 통일부가 남북간 ‘합의정신 존중’에서 ‘합의 존중’으로 표현을 바꾼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도 3.1절 기념사에서 “합의사항 존중”이라고 명백히 밝힘으로써 10.4선언에 대해 초기에 비해 ‘전향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북한의 최성익 부회장은 또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도 거론, “기본적으로 (남북 당국 차원이 아니라) 북한 군인과 관광객 사이의 문제”인 만큼 “남북관계가 좋았으면 왜 (남북) 정부간 합동조사를 못했겠느냐”고 말했다고 미주 교포는 전했다.

최 부회장은 “남북관계를 떠들어대고 금강산 관광을 중지하는 등 이명박 정부가 대결정책을 구사해서 현대아산도 막심한 피해를 봤으며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통한 상봉도 이뤄지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 부회장은 남북간 철도연결 사업도 거론, 지금같은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남한 제품을 중국 등으로 실어나르면 얼마나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텐데…”라고 말하고, 남한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도입 문제에 대해서도 ‘(남한 정부가) 좀더 직접적으로 북한에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이 교포는 전했다.

북측 관계자들의 이러한 말들에 대해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공식적으로는 대남 강경책을 취하지만 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뭔가 남한이 움직이면 북한도 움직일 수 있다는 대화의 실마리를 비공식적으로 흘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도 “당분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므로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지만, 북한의 사정이 그만큼 다급하기 때문에 대남 강경책을 보완하기 위한 유화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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