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陸여사 저격 직후 美에 정상회동 제안

북한 김일성이 1974년 8월 루마니아를 통해 제럴드 포드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비밀정상회동을 제안했던 것으로 최근 공개된 미국 외교문서에서 드러났다.

김일성은 집권 내내 반미(反美)노선을 중요한 통치기반으로 삼아왔다. 특히 미국과는 외교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철천지 원쑤(원수)’로 내세워왔다는 점에서 북한이 먼저 정상회동을 제안한 숨은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미 정부가 당초 ‘1급비밀(Top Secret)’로 분류했다가 지난 6월 비밀해제, 최근 공개한 포드 당시 대통령과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대통령 특사였던 바실 푼간 대통령 고문의 1974년 8월27일 백악관 대화록(Memorandum for the President’s file)에서 드러났다.

지난 1989년 동유럽 공산주의 몰락때 공개처형된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대통령은 생전에 김일성과 호형호제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김일성의 비밀정상회동 제안은 상당 정도 진심이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대화록에 따르면 푼간 고문은 “북한 지도부가 토의를 위해 미국과 비밀접촉을 갖기를 원한다(The North Korean leadership wants to have confidential contacts with the United States for discussions)”면서 “그들이 루마니아에 (이를) 제의했다(They have suggested Romania)”라고 전했다.

푼간 고문은 이어 “차우셰스쿠 대통령이 만약 당신(포드 대통령)이 그것(비밀회동)을 원한다면 돕겠다고 제안했다(President Ceasescu has offered to help if you want to do it.)”고 밝혔다.

대화록에는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무엇을 토의하기 위해 미국측과 비밀리에 만나기를 원하는 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먼저 비밀정상회동을 제안했다는 게 눈길을 끈다.

김일성이 미국에 비밀정상회동을 제안한 시점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1974년 8월15일)’ 직후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박정희 정권은 저격 사건 이후 북한과의 관계를 끊고 북한과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저격사건 당시, 우리 정부는 재일조총련과 북한의 사주로 재일교포인 문세광이 저지른 것이라고 결론짓고 그 핵심 배후가 김호룡 재일총련 오사카(大阪) 이쿠노니시(生野西) 지부 정치부장이라면서 그의 신병을 넘겨줄 것을 일본측에 요구한 바 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한국 정부의 보복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통미봉남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미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미국을 통해 한국의 반발을 무마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더 이상 긴장상태가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치고 빠지기 전략’일 수 있다는 것.

이와 함께 차우셰스쿠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당시 포드 대통령은 “당신들의 제안에 대해 감사한다(We are grateful your offer)”면서 “키신저 국무장관과 내가 그것에 대해 세부적으로 논의하겠다(Secretary Kissenger and I will discuss it in detail)”고 답변했다.

포드 대통령은 또 “그런 접촉에 앞서 선행돼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Certain things must preceed such contacts)”면서 “우리는 확고한 양해가 이뤄지지 않으면 끼어들지 않을 것(We don’t want to go in without firm understandings)”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키신저 장관이 루마니아 대사를 접촉할 것(Secretary Kissenger will contact your Ambassador)”이라고 북한 김일성의 비밀정상회동 제의를 검토해볼 의향이 있음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동석하고 있던 당시 키신저 국무장관은 “우리가 얘기를 나눈 뒤 당신 나라 대사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겠다”고 밝혔고, 푼간 고문도 “북한측에 이를 전달하겠다. 좋은 답변이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미 외교문서는 포드 대통령과 차우셰스쿠 대통령이 이듬해인 1975년 6월11일 오후 백악관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도 북한 문제가 거론됐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당시 김일성이 제안한 북미 비밀정상회동은 성사되지 않았다. 또한 북미 간에 비밀정상회동을 위해 얼마나 실무적인 논의와 준비가 이뤄졌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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