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휴전선 근무 군인들 ‘탄피·더덕’ 팔아 제대 준비

북한 청년세대 대부분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인민군에 입대해 10년 세월을 고스란히 군사복무에 바친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전만 해도 군인들은 군복무 기간 입당이나 대학추천, 좋은 평점을 기대하며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만을 부르짖으며 고지식하게 군사복무를 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이 달라졌듯이 군인들 또한 예전의 모범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장마당에서 물건을 갈취하거나 밤에 몰래 식량이나 가축을 훔쳐가는 ‘도둑’ 이미지만 커졌다. 


지금 군인들은 입당과 대학추천도 중요하지만 군복무 기간에 한푼이라도 벌어서 사회에 나가려고 기를 쓴다. 


돈 버는 기술이 좋은 군인들은 상급자를 끼고 돈 벌이에 나선다. 국경경비대나 일반 군인들은 말할 것 없고 북한에서 가장 최정예부대라고 말할 수 있는 민경(군사분계선 경계 임무)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북한식으로 말해 민경은 ‘최전선’을 지키는 군인들이므로 사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들만큼 철저히 준비된 군인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처럼 준비되었다고 하는 민경군인들도 제대 후 사회생활을 위해 밑천을 마련하는 데는 예외가 아니다. 


속담에 ‘못이 틈이 있어 들어가냐’고 했다. 아무리 철통같은 군기 속에도 그것을 피해 제몫을 챙기려는 군인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북한군 말대로 하면 ‘미군, 남조선괴뢰군’과 총을 맞대고 있는 민경 군인들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곳일수록 돈벌이 수단은 더 많다. 휴전선은 지난 6.25 전쟁 시 유엔군과 북-중연합군 사이 교전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다. 특히 정전회담이 진행되었던 전쟁 마지막 기간은 서로 밀고 당기며 한치의 땅이라도 차지하기 위한 교전이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다.


때문에 중부전선 700고지나 1211고지 등 휴전 지대에 가면 당시를 말해주는 증거물로 수십년 된 탄피들이 그대로 깔려 있다.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이 곳은 접근금지 구역이어서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탄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휴전선을 지키는 민경군인들의 차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5년까지 중부전선에서 복무하다 제대한 민경출신 제대군인 김주환(가명) 씨는 “제대하기 전에 돈 1천만원을 만들기 위해 탄피수집과 더덕캐기 등 물불 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탄피(동) 1㎏이면 북한 돈 3천원이었다. 탄피 한 베낭이면 보통 50㎏ 정도로 15만 원이 됐다. 보통 한 등성이에 들어앉아 두 배낭 정도 주으면 30만 원이라는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다. 


이 지대는 더덕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 많은 더덕 역시 휴전선에 접근하는 사람이 없으니 민경군인들의 차지가 됐다. 주인 없이 펼쳐진 더덕밭에 들어앉아 싱싱한 더덕을 손에 잡히는 대로 부지런히 캐면 불과 몇 시간 안에 20㎏은 캘 수 있다.


당시 더덕 1㎏이면 2천 원이었으니 20㎏이면 4만 원이다. 하지만 이런 돈벌이도 민경군인들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군기가 엄격한 민경부대에서 웬만한 인맥이 없으면 이런 돈벌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우선 부대 군사, 보위부, 정치 간부들을 잘 삶아놓아야 일단 무슨 일이 벌어져도 막을 수 있다.


때문에 먼저 이들에 대한 사업을 해놓은 다음 직속간부들도 적당히 회유해놓고 판을 크게 벌리는 군인들이 생겨났다. 김 씨는 천만 원을 벌려면 입막음 용으로 수백만 원은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정도의 능력이 안되는 군인들은 그냥 조금씩 눈치를 봐가며 짬시간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기껏해야 수십만 원에서 1백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지금도 민경부대에서는 탄피나 더덕을 찾아 산 고개를 헤매는 군인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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