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후쿠다 시대’ 환영(?)

납치문제로 북일관계가 꼬일대로 꼬인 가운데 북한은 25일 총리에 선임되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71) 자민당 총재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보일까.

북한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지만 대화를 중시하는 후쿠다 총리에 대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평가를 내릴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언론보도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은 지난 8일 후쿠다 전 관방장관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후임으로 유력하다고 전하면서 “이전 일본 수상이었던 후쿠다 다케오의 맏아들로, 고이즈미 정권 이후 수상직 쟁탈을 위한 아베와 선거전에 후보자로 나섰던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반면 민주조선은 경쟁자였던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간사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한은 후쿠다 총리의 집권 초기에는 분위기 탐색에 나서겠지만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일본과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우선 후쿠다 총리가 1977년 ’후쿠다 독트린’을 발표한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의 아들이라는 점은 일본과 대화에 나설 북한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대목이다.

사실 북한과 일본의 첫 외교관계가 시작된 것은 ’후쿠다 독트린’이 발표된 이후 1977년 9월 체결된 ’민간어업잠정합의서’였고 이 합의 후 북한은 1981년 9월 대일접근을 강화하기 위해 ’조.일 우호친선협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북한이 후쿠다 총리 가문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며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퇴임 후 방북했을 때 자녀를 동반할 정도였고 북측당국은 이들을 극진히 환대했다”고 회고했다.

여기에다 후쿠다 신임총리는 관방장관시절 당시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무상을 제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사상 첫 북.일정상회담과 ’평양선언’ 합의에 깊숙이 개입했다.

특히 ’일본의 임동원’으로 불리는 당시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북측과 정상회담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발표 직전까지 일체의 사실을 숨긴채 후쿠다 총리와만 협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대북 압력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다른 방법도 적극 고려해 볼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후쿠다 총리가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전 자민당 부총재와 다나카 전 국장 등을 중용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또 납치문제에 대한 후쿠다 총리의 실용적 접근도 북한에게는 일본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데서 숨통을 틔워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후쿠다 총리는 관방장관시절이던 2002년 북한이 가족상봉을 위해 일본에 보내준 납치 피해자 5명을 일본에 남길 것인지, 북한으로 돌려보낼 것인지 문제를 놓고 ’일단 돌려보낸 뒤 가족과 함께 귀국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아서 ’돌려보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아베 관방 부상과 대립했고 결국 이 문제는 관방장관에서 사임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납치문제에 대한 유연한 후쿠다 총리의 입장은 이달 초 몽골에서 열린 북일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를 통해 만들어진 북일간 대화 분위기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북핵 6자회담의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그룹 회의 북한측 수석대표인 송일호(宋日昊) 외무성 북일국교정상화 교섭담당 대사는 회담을 마친 뒤 “과거 청산과 납치문제를 병행해 협의한 일본의 자세는 ’건설적’이다”라고 평가했던 만큼 후쿠다 총리의 집권으로 ’과거청산과 납치문제의 병행 논의’에 속도가 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아베 시대의 납치문제 제일노선이 후쿠다 총리의 등장으로 납치문제와 과거청산 병행 노선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며 “6자회담에서 부정적 역할을 해왔던 일본이 중유제공 등을 통해 긍정적 역할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도 후쿠다 총리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질 것”이라며 “앞으로 대북정책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의 대화와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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