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후계, 중국의 ‘김정남 지지설’ 있다

김정일은 북한이라는 국가를 완전히 독점소유했을 뿐 아니라 이 절대권력을 자식에게 상속하려고 한다. 상속받은 나라를 다시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권좌는 누구에게 주어질 것인가.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그랬듯이 봉건왕조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해 자신이 가장 총애하고 아끼는 자식에게 물려줄 것으로 확실시된다.

그 유력 후보군으로 떠오른 인물들이 바로 정남(34), 정철(24), 정운(21)이다.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차남인 김정철(金正哲·24·사진)이 형인 김정남(金正男·34)을 제치고 김위원장의 후계자로 결정됐다고 일본 주간지 <아에라>가 최근 보도했다.

<아에라>는 북한의 동정을 잘 아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은 결심했다”고 전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몇 개월 전부터 북한의 각 직장을 비롯한 각급 조직에서 ‘김정철이야말로 체제의 정통 후계자’라고 주민들에게 가르치는 정치학습 캠페인이 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지도부에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이런 학습은 이뤄질 수 없다고 <아에라>는 덧붙였다.

반면, 올해 2월 러시아 주간지 <블라스티>(권력)는 김정일의 후계자로 첫째 아들인 김정남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블라스티>는 김정일의 두번째 부인이던 고영희가 지난해 6월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인 정철, 정운보다는 첫번째 부인이었던 사망한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정남이 후계자로서 유력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6월 김정일의 실질적인 부인으로 정철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고영희가 유선암으로 사망하면서 김정일 후계자 문제가 다시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즉, 김정남이 그동안의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국내로 들어가 후계자 다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중국이 김정남 지지하는 듯”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최근 “김정남이 중국에 오래 머물렀고 중국이 정남을 지지하면서 후계구도가 정남에게 유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황 전비서는 “후계문제는 김정일의 말 한마디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게 돼있다”면서 “첩의 자식이니, 해외를 떠돌았다느니 하는 문제는 정남의 후계 결정에 큰 문제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에는 해외에서 외부세계를 오래 경험한 정남이 중국식 개혁 개방을 이끌기에 유리하다는 것이 중국의 판단, 따라서 정남을 후계자로 적극 후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영희가 죽기 전까지는 후계자는 정철이 낙점된 것으로 확실시 됐다. <월간조선>은 2003년 3월호를 통해 북한 인민군이 2002년 8월부터 인민군 장병들을 상대로 김정일의 부인을 개인 우상화하는 학습자료를 입수•보도했다.

조선인민군출판사가 발간한 ‘존경하는 어머님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 끝없이 충직한 충신 중의 충신이다”는 제목의 16쪽 분량의 이 학습자료에는 ‘존경하는 어머니’에 대해 “최고사령관 동지의 신변 안전을 위해 모든 심혈을 바치고” “8년 여 세월 최고사령관 동지를 따라 전연(최전선) 고지에 올랐다”고 묘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존경하는 어머니’가 고영희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고영희는 1998년부터 군부대 등 김정일의 현지시찰에 동행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998년 미국으로 망명한 고영희의 동생 고영숙에 따르면 “고영희는 두 자식의 안전을 위해서는 둘 중의 한 명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당시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와 적극 연대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자신이 망명하기 전 고영희가 김 비서와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의 후계자로는 고영희 부인의 장남 정철 왕자가 유력시되고 있다는 설이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세간의 흥미를 끌었다.

그는 김정일이 정철 왕자에 대해 자주 나쁜 평가를 내렸다면서 “그 애는 안돼. 여자아이 같아”라는 김정일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얼굴과 체형이 똑 같은 정운 왕자를 오히려 김정일이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이다.

▲ 성혜림 아들 김정남

그러나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후계자 반열의 선 순위는 정남이었다.

김정일은 김정남을 회의실로 데려가 중앙 자리를 가리키면서 “네가 커서 큰 소리 칠 자리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정남이는 경제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 민족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김정남 변수, 아직은 무시못해

김정일 경호원 출신 탈북자 이영국(44)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은 지난 99년 김정남에게 ‘네가 (나를) 계승하면 탈출(탈북)자 문제를 끄집어내지(해결하지) 않고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후 김정남은 베이징(北京)에 비밀 거점을 마련해놓고 수시로 이곳을 오가며 중국 등지의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시키는 작업을 총괄해왔다고 이씨는 덧붙였다.

그러나 정남이 후계자 자리에서 급속하게 이탈하게 된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첫 번째는 96년 성혜랑(이모) 서방 망명사건이었다. 두 번째는 정남이 2001년 5월 1일 위조여권을 갖고 일본 나리타 공항으로 밀입국 하려다 체포되었다는 보도가 세계로 퍼진 사건이다.

정남은 당시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다”고 밀입국 사유를 밝혔다. 이 사건은 정남이가 아버지의 눈 밖에 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67시간 만에 일본에서 추방되어 중국 베이징 공항에 내린 정남은 이후 한동안 북한에 들어가지 않고 중국, 러시아, 홍콩, 마카오 등을 여행하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생 문제와 물의를 일으킨 행적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정남이 ‘후계자’ 대열에서 탈락했다고 보는 것이 당시까지는 타당한 분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정남과 주변 세력들이 정철과 정운 형제에 역공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정보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전문가들도 후계자 문제에서 정남의 변수를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는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러이사와 중국의 소식통을 통해 입수되고 있다.

최근 한 고위 탈북자는 고영희 사망 이후 성혜림의 아들 김정남을 내세우는 세력들이 “고영희도 죽고 성혜림도 죽었으니, 조선의 풍속에 따라 장남을 세워야지 차남을 세우겠는가라며 고영희의 아들을 지지하는 세력과 옥신각신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후계자 확정돼도 권력이양 오래 걸려

그러나 여전히 정철이 후계자로 지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7월초 조선인민군출판사가 제작한 ‘학습제강’이 국가정보원 대북파트에 입수됐다고 최근 <신동아> 9월호가 보도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 증언을 인용한 이 잡지는, “북한 권력승계의 의미있는 진전을 보여주는 이 문서는 현재까지는 비무장지대를 담당하는 ‘민사행정경찰’부대에만 배포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김정일 정권이 봉건왕조 국가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김정일이 가장 총애한 여성(고영희)의 장남, 즉 정철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울러 김정일 정권의 본질이 김일성의 직계정권, 그 중에서도 장남으로 승계되는 이른바 ‘원가지 정권’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일단은 정철이 후계자로 지명되는 데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김정일의 실질적인 ‘장남’에 해당하는 자식은 성혜림 사이에 태어난 정남이다. 그러나 정남은 김정일이 다른 남자의 부인을 가로채 태어난, 말하자면 ‘사생아’ 신분이다. ‘지도자’ 동지가 유명 여배우를 몰래 데리고 살았다는 사실이 북한 주민에게 알려진다면 김정일로서는 자신의 권위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또 한편, 고영희 역시 북한 주민들 사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김정철을 갑작스럽게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게다가 김정철의 나이가 아직 어린 점을 감안하면 후계자를 위한 내부 수업을 좀더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고영희 아들 김정철

실제 김정일은 8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을 대외적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정도의 지위에만 올려놓고 모든 실권을 장악한 경험을 스스로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후계자에게 권력이양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처럼 겁이 많고 이기적인 인간형일수록 죽음이 가까이 오지 않은 이상 쉽게 권력을 내놓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후계자가 확정되었다 해도 김일성-김정일식의 권력이양 형태가 아니라 나라를 대표하는 지위는 물론, 당과 군, 내각 전반에서 김정일의 권력은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며,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도 김정일의 섭정은 불가피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후계자, ‘군사칭호’ 달고 등장할 것

정철은 현재 당 조직지도부와 군 관련기구에서 후계자 수업에 돌입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때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발표된 ‘백세봉’이 정철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만약, 김정철이 후계자로 공식 지명돼 발표된다면, 김정일 정권이 현재 ‘선군정치’를 실시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정철은 당 칭호보다는 ‘군사 칭호’를 달고 후계자로 발표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김정일 정권이 처한 대내외적 조건과 환경을 고려해보면 과연 3대 세습 대물림이 가능할 것인가에 회의적인 관점도 엄연히 존재한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이러한 ‘후계자’ 운운하는 논의 자체가 북한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며, 또 후계자를 세습적으로 정하려는 김정일 정권이야말로 철면피한 독재라는 사실을 반증해준다고 말했다.(‘김정일의 여자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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