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회담.공동행사 연기·취소 사례

남북간에는 합의된 회담이나 행사 등이 여러가지 이유로 연기.취소된 사례가 적지 않다.

2000년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이 “기술적 준비관계 미비”를 이유로 내세우는 바람에 합의보다 하루 늦춰 열리는 곡절을 겪었다.

이를 두고 현대가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송금키로 했던 자금의 입금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정상회담 준비 협상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북한이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김대중 대통령이 참배해야 한다고 요구해 그에 관한 협상이 난항을 겪었던 때문이라고 나중에 설명했다.

제2차 정상회담의 연기와 유사한 사례는 작년 8월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8.15남북공동행사가 수해로 취소된 것.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는 당시 남측에 보낸 전문에서 “최근 예년에 없는 폭우로 인해 북과 남은 커다란 피해를 입었으며, 북측에서는 여러 지역에서 수해 복구를 위해 많은 인민들이 동원된 상태”라며 “올해 8.15 통일행사를 개최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특히 북한은 외부에 자신이 보여지는 모습에 많은 신경을 쓰는 사회라는 점에서 수해로 망가진 피해상황을 고스란히 노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정상회담 연기 배경에 대해 “손님들이 오는 만큼 평양을 깨끗하게 단장한다고 야단이었는데 물난리가 났으니 어느 정도 시가지를 정리한 다음 하자고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한달이라는 연기 기간도 수해복구에 필요한 시간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북간 합의의 연기.취소는 수해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사태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북한은 한미간 대규모 군사훈련을 내세운 사례가 많다.

작년 3월 북한은 연합전시증원연습(RSOI)과 독수리훈련(FE) 등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이유로, 그달 하순 예정됐던 제18차 남북장관급회담을 4월로 미뤘다. “전쟁연습과 대화는 양립 불가”라는 논리에서다.

권호웅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은 전화통지문에서 “남측이 우리의 정당한 요구와 민족의 기대를 저버리고 미국과 함께 우리를 반대하는 대규모 전쟁연습을 또 다시 강행하려는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적대적인 전쟁연습과 평화적인 대화는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2005년 8월에는 을지포커스렌즈(UFL)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이유로 들어 당시 8월말 예정됐던 6자회담을 9월로 연기하기도 했다.

당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측에 우리를 반대하는 전쟁연습기간에 6자회담에 나갈 수 없고 전쟁연습으로 나빠진 분위기가 개선될 수 있다고 보아지는 9월 중순에 가서 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10월 초로 연기한 것도 UFL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평양 지역에 집중된 수해 때문이지만, 북한이 ‘수해를 입은 김’에 연기를 통해 UFL기간을 피하는 효과도 기대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군사훈련과 대화의 양립 불가라는 자신들의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는 부수 효과를 노렸다는 지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때와 달리 북한은 18일 연기 통지문에서 을지훈련 때문이라는 것은 전혀 내비치지도 않은 채 수해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기존 회담 개최 원칙과 이를 위한 실무준비 과정에서 합의는 그대로 유효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북한은 다만 연기 통보 하루 전이나 통보 당일인 18일에도 각각 조선신보와 노동신문을 통해 UFL을 “적어도” 이번엔 중단하거나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간 합의가 남측이 약속한 경제지원의 미이행으로 어려움을 겪은 사례도 있다.

1999년 6월21일 남북이 베이징에서 차관급회담을 열기로 하고 양측 대표단이 모두 베이징에 도착했으나, 남쪽에서 지원키로 한 비료 10만t의 최종분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측은 회담 당일 일방적으로 회담 연기를 발표했다.

당시 대북 비료지원분 중 마지막 2만2천t은 회담 예정일 다음날인 22일 새벽 1시 남포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북측은 비료지원이 이뤄질 때까지 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북한은 올해 3월에도 2천500만달러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 동결자금의 해제가 북-미-중 사이의 협의로 최종 결정됐음에도, 그리고 기술적인 문제로 송금이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송금이 확인되기까지는 6자회담에 임하지 않았다.

또 다른 종류의 사례로, 북한은 2004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발의 때 “정세불안”을 이유로 남쪽에서 열기로 했던 각종 실무회담에 불참했다.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다양한 종류의 남북간 합의 미이행이나 연기 사례가 있었지만 이번 정상회담 연기는 사상 최대 수해라는 불가항력적인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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