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황장엽 암살기도..후계구도 `치부’ 건드렸나

1997년 2월 남한에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살해하라는 지령과 함께 북한이 남파한 간첩 2명이 관계 당국에 검거돼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의 남파 간첩은 일반적으로 남한 사회의 혼란 조장과 각종 기밀 수집 등 포괄적 임무를 부여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에 붙잡힌 `탈북자 위장’ 간첩들은 오로지 황장엽 전 비서를 암살할 목적으로 밀파됐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된다.


과거를 되짚어 봐도 이번과 유사한 사례는 거의 전무해, 1982년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한영씨 피살 사건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사망)의 조카인 이씨는 1982년 스위스 주재 한국공관을 통해 귀순해 국내에 정착했지만, 황장엽 전 비서가 남한에 망명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7년 2월15일 경기도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북한의 남파 간첩에 피격돼 숨졌다.


최근 황 전 비서는 대학생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일종의 안보강연을 부정기적으로 다니곤 했지만 정기적이고 공식적인 대외활동은 접은지 오래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대북 단파라디오 `자유북한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황장엽 민주주의 강좌’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지만 이 또한 일반인 청취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황씨 특유의 달변으로 끌어가는 강연이나 방송 내용은 대부분 북한 `김정일 체제’를 신랄히 비판하는 것이었다고 주변 지인들은 말한다.


일례로 황 전 비서는 작년 3월 자유북한방송에 출연해 “시종일관 여기(남한)를 적화하자는 것이 김정일의 목표이기 때문에 남한에서 김정일 집단과 대화해도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북한의 뿌리깊은 호전성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또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 폭파를 카드로 삼아 미국과 대화 채널을 뚫으려 애쓰던 2008년 9월에는 “시늉에 불과한 핵시설 폐기 얘기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며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작년 10월 북한의 개정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문구가 삭제된 것에 대해서도 “공산주의를 내세우면 왕정복고식 (3대)후계세습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선군정치를 앞세우면서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라면서 `아픈 곳’을 들춰냈다.


이같은 황씨의 과거 발언들을 보면 북한에 황씨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전 비서가 남한에 망명한지 만 13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왜 황 전 비서를 살해하려 했는지는 여전히 개운치 않은 의문을 남긴다.


실체적 근거는 없지만 그 이유를 최근의 북한 내부사정 변화에서 찾는 분석이 그나마 유력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정일 위원장의 3남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이다.


북한은 작년 1월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 올해 2년차로 접어든데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도 완전하지는 않아 내심 후계체제 구축이 다급한 처지다.


그런데 입만 열면 아픈 곳을 찔러대는 황 전 비서의 존재가 심기를 건드리는 수준을 넘어서 `3대 권력세급’의 정당화 논리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황 전 비서는 2008년 9월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과 면담에서 “김정남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면서 “중국 정부가 김정남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왔고,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런 류의 발언도 김정은과 주변의 `군부 강성파’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그런가 하면 작년 김일성 주석 생일의 `축포야회'(불꽃놀이)와 `150일 전투’ 등을 주도하면서 후계자 치적 쌓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이 황 전 비서를 제거해 또 하나의 공적으로 삼으려 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공작원 출신 탈북자는 “1990년대에도 공작 부서의 일부 충성분자들이 김 위원장에게 황 전 비서 암살 계획을 보고했지만 김 위원장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들었다”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김정은 업적 쌓기 차원에서 반역자를 처단해 대내외적으로 과시할 목적으로 군부에서 기획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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