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황금만능주의’에 설 덕담 “돈 벼락 맞아라” 인기

직장인 정영주(38·남) 씨는 설 명절이면 친인척은 물론 지인, 직장 동료 및 상사에게 전할 새해 인사를 고민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쏟는다. 식상한 인사보다는 상대의 처지도 고려하고 유행도 따르는 덕담을 건네고 싶다는 것. 정 씨는 “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연락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되도록 식상한 인사보다 한해 시작을 기분 좋게 할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유행하는 설 덕담은 어떨까? 최근 북한 설 덕담 키워드는 ‘돈’이라는 게 탈북민들의 증언이다. 과거에는 건강이나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곤 했지만, 1990년대 후반 대량아사시기를 거치고 시장이 확산되면서 ‘돈을 많이 벌라’는 의미의 덕담이 훌쩍 늘어났다는 것이다.

탈북민 송경애(가명·52) 씨는 28일 데일리NK에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북한에서도 ‘돈벼락 맞아라’ ‘호박 맞아라’ 같은 덕담을 주고받는 게 일상화 됐다”면서 “이제는 입당하는 것보다는 장사를 해 떼돈을 버는 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막역한 친구 사이에도 ‘돈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살자’는 말을 주고 받으며 한 해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송 씨는 “물론 웃어른에게는 솔직하게 ‘돈 많이 버시라’는 말은 하지 못한다”면서 “대신 ‘건강을 기원하고 새해를 축하합니다’는 의례적 말만 한다”고 덧붙였다.

돈을 많이 벌라는 덕담을 하는 것보다 실제 돈을 쥐어주는 게 나은 경우도 있다. 바로 북한 간부들을 상대할 때다. 특히 장마당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로서는 단속에 나서는 보위성이나 보안성 간부들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설 명절과 간부 생일 등에 꼬박꼬박 뇌물을 내는 실정이라고 한다.

탈북민 김혜련(43·가명) 씨는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주민들이 올 한해도 무사히 넘기려면 간부들에게 새해 뇌물부터 쥐어주는 게 필수”라고 전했다.

이렇게 설 명절이면 간부들이 뇌물을 쓸어 모으게 되자, 주민들 사이에서도 친한 친구끼리는 ‘올해 탁자리 하나 잡아라’라는 덕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탁자리’는 곧 간부 책상을 뜻하는데, 즉 간부 자리하나 차지해 돈을 많이 벌라는 뜻으로 쓰인다. 김 씨는 “간부들이야 책상에 앉아있기만 해도 뇌물을 받아 돈을 벌 수 있으니, 요새는 덕담 삼아 그런 식의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돈’ 위주의 덕담은 북한에서 ‘자본’이 갖는 의미가 크게 변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송 씨는 “1990년대 초까지는 장사꾼에 대해 업신여기는 분위기였다”면서 “하지만 대기근 이후 배급제가 무너지자 주민들 스스로 밥벌이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을 수밖에 없게 됐고, 이에 따라 장사꾼은 소위 ‘머리가 깬 사람’이라 대접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