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형제 끌어들여 상속재산 얻어 냈지만 결국…

사망한 실향민의 유산을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들이 당장 상속할 수 없는 경우에는 중립적 위치에 있는 재산관리인이 이 유산을 관리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지난 5월 시행된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적용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례법 제13조에 따르면 북한주민이 남한 내 재산을 취득한 경우 취득이 확정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재산관리인의 선임을 청구해야 한다. 또 청구할 수 없는 경우 친족, 그 밖의 이해관계인 또는 검사가 재산관리인의 선임을 청구할 수 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1단독 박희근 판사는 30일 윤 모(77·여) 씨가 ‘자신을 북한 형제들의 재산관리인으로 선임해 달라’고 낸 청구를 기각하고, 김 모(44) 변호사를 재산관리인으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태어난 윤 씨는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를 따라 월남했다. 윤 씨 형제가 북한에 남겨진 상황에서 휴전 됐고, 윤 씨의 아버지는 남한에서 재혼해 자녀 4명을 낳았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윤 씨와 이복형제들 사이에 상속재산을 두고 갈등이 벌어졌다. 윤 씨는 북한에 있는 형제들도 상속권이 있다고 보고 미국인 선교사를 통해 북한에 거주하는 형제들의 생사를 확인했다. 이들의 생존을 확인한 윤 씨는 남한의 이복형제들을 상대로 유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통해 100억 원대 유산 가운데 부동산과 32억 50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이후 윤 씨는 북한의 형제들이 재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북한 형제들의 재산관리인으로 선임해 달라”고 청구했다.


박 판사는 청구인 윤 씨가 재산을 남긴 고인의 큰딸로 혈육이기는 하지만, 여러 소송을 거쳐 북한에 있는 다른 유족들의 상속재산을 확보한 뒤 특례법 시행 직전에 이를 숨겼다고 의심할 만한 행위를 했다고 봤다.


그는 “재산관리인 제도는 북한 주민이 상속 등으로 소유한 남한 내 재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재산이 북한으로 유출돼 다른 용도로 전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재산의 효율적인 보호·관리를 위해 이미 재산에 이해관계를 갖게 된 청구인이 아니라 중립적인 지위에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특례법은 또 남한 내 북한 주민들의 재산을 처분 또는 반출하기 위해서는 법무부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에 따라 남한 내 북한 주민들의 재산을 행정부가 일원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판결과 관련 법원 관계자는 “북한 주민에게 남겨진 재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특례법의 입법 목적 중 하나”라며 “이 사건은 특례법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