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협박 오페라’-南 ‘독재타도!’ 왜 썰렁한지 아십니까?

I.
작년부터 김정일의 대남 협박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해서 올해 4월의 탄도미사일과 5월의 제2차 핵실험, 그리고 개성공단 한국근로자 및 두 미국 여기자 납치 ‘등등’으로 이어졌다. 실제로는 이 보다 훨씬 많은 수의 협박 리스트가 바로 이 ‘등등’에 들어 있지만 솔직히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현재 한반도의 남북관계를 보면 무엇인가 “김이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뭔가 파장의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북한의 저 수많은 협박리스트가 전혀 작동하지 않을 뿐더러 차라리 자신들의 목을 죄어 들어가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된 것이다. 김정일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역도 리명박!”이라는 오페라의 관객석에는 그 재미없는 ‘장군의 아리아’를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남한의 친북좌파들만이 듬성듬성 자리를 채우고 있다.

제2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협상 파행의 ‘진정한’ 의도에 대한 전문가들의 이런 저런 추측도 이제는 생경한 느낌만이 들 뿐이다. 차라리 작년부터 시작된 이 ‘협박 메들리’는, 떨어지기 직전의 늦가을 고엽처럼 병색이 완연한 김정일이 그동안 애지중지 모아왔던 그의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장난감들’을 모두 꺼내, 죽기 전에 한꺼번에 쏘아대고 불태우는 ‘순장(殉葬)의 불꽃놀이’처럼 느껴진다.

시인 고은에 의하면 “예술적 재질이 출중한” 김정일이 스스로의 장송곡을 미리 연주하고 있다고나 할까? 7억불이 들든, 북한 인민들이 굶어 죽든 ‘광폭(狂暴)의 미학’에 탐닉하는 대전략가, 대장군, 대예술가에게 파리 목숨 몇 개와 돈 몇 푼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깡패의 협박이 먹혀들어가지 않을 때, 우리는 썰렁함을 느끼게 된다. 지금 북한의 협박 오페라가 썰렁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 협박의 비현실성에 있다. 그것은 협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 협박자의 정신상태가 현실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협박의 추억’이라는 과거의 현실(=햇볕정책), 즉 현재의 비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미 망했으면서도 자신만이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며 ‘항구에 배만 들어오면…’을 중얼거리는 몰락한 재벌처럼 환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다. 히틀러가 그랬고, 일본의 도죠 히데키가 그랬으며, 차우세스쿠 역시 그랬다. 이제 김정일은 이들과 똑같은 길, ‘독재자의 말로(末路)’를 걷고 있다. 어느 소식에 의하면 김정일은 술을 마시고 우는 일이 잦다고 한다.

II.
“역도”와 “패당”이 김정일의 망가진 현실감각을 말해 준다면, “독재”라는 또 다른 비현실을 주장하며 망상을 좇는 일군의 인간들이 있다. 그것은 김대중 전대통령과 그의 교시를 따르는 민주당 그리고 친북좌파들이다.

이들은 작년에 현실이 아닌 ‘인간광우병의 위험’을 주장하며 불법 촛불집회를 찬양 선동하였다. 현재 촛불집회에 대한 표준적 해석에 의하면 한국 좌파들과 그 동조집단들은 지난 10년 누렸던 권력의 단맛을 잊지 못하여 ‘비현실을 현실’이라 주장하며 ‘정권타도’를 외쳤다는 것이다.

불법 촛불집회가 실패하자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현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고, 얼마 전 한 TV토론에 나온 한 민주당 의원의 발언에 의하자면, 이러한 독재 상황 하에서는 집시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은 대북 위협을 핑계로 정전협정 무효를 주장하고 나온 김정일 정권의 행태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한 마디로 수청들기를 거부한 춘향이에게 “네 죄는 네가 알렸다!”고 발을 구르며 외쳐대는 변사또의 수작과 다를 바 없다.

민주당 등등은 실제로 한국의 현 정권이 ‘김정일의 퍼받기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늑탈 당하기를 거부하자 “네가 독재인 것은 네가 알렸다!”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호에 맞추어 행동하고 있다. 이들은 ‘정권 탈환’과 ‘현 정부의 대북정책 비판’이라는 정당과 정치인의 합법적 영역을 과거의 ‘민주화 투쟁’으로 포장하여 선동을 일삼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들임을 모르면서, 혹은 알고도 모른 척 하면서 ‘민주주의 회복’을 자신들만의 고유권리인 양 독선(獨善)을 부리고 있다.

결국 남북의 김대중과 김정일 집단은 비현실을 현실이라 주장하면서 합리적 판단능력을 상실하였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합리적 판단능력을 상실한 정권과 나라는 결국 망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벌거벗은 임금님’의 현실을 깨끗한 눈으로 볼 줄 아는 아이들과 국민들은 ‘김대중과 그의 악단’이 벌거벗고 출연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현재 한국은 독재 치하”라거나, “박정희 시절에도 없었던 공안 정국”이라는 표현이 비현실인지 국민들은 체험을 통해 몸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독재 타도!”의 목소리를 높일수록 바로 그 외침이 현재 한국이 독재국가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지성인이라고 불리는 한국 대학교수들과 심지어 멀리 미주지역 교수 일부들의 시국선언문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들 역시 비현실을 현실로 착각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좌파’임이 그 자체로 선을 의미한다고 믿으며, 우파는 아무리 두들겨 패도 괜찮을 만큼 과거에 쌓인 업보와 죄악이 충분히 많다고 믿는 한국좌파의 오만함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시대정신이 바뀌어 ‘현실을 보지 않은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인 ‘벌거벗겨진 상태’를 이들은 모른다. 북한의 인권상황이라는 한반도의 가장 큰 거악(巨惡)에 눈을 감은 자들의 경우 역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들의 도덕적 아우라(Aura)를 쌀 도정(搗精)하듯 벗겨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III.
무더위가 극성을 부려도 때가 되면 서늘한 기운의 도래를 감지할 수 있듯이, 이미 한반도에서는 남과 북의 비현실적 집단들의 몰락의 징조를 노련한 사람이라면 이미 예감하고 있다. 과거 과학적 일기예보가 없었던 시절, 뱃사람들은 바람에 담긴 습도와 온도, 풍향의 미세한 변화에서 태풍의 도래를 감지하였다. 그것은 노련한 의사가 문진(問診)과 촉진(觸診)을 통해 당장 죽을 것 같이 위급한 환자의 병세에서도 미세한 회복의 징조를 찾는다거나, 거꾸로 건강하게 보이는 사람에게서도 죽음의 도래를 감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김정일 정권의 붕괴에 따르는 한반도의 대변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 모델은 없다. 이런 점에서 미국학자 에버슈타트의 말처럼 그것은 일종의 ‘예술’과도 흡사하다. 그러나 한 집단의 몰락과 멸망에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비합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때 비합리성이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차라리 현실을 부정하며 거꾸로 비현실을 현실이라 주장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조금만 생각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화의 법칙’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세습 조폭체제’를 고수하려는 김정일 정권은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화에서 도태되어 몰락과 소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으며, 남쪽의 ‘김대중과 그의 악단’ 역시 몰락할 소지가 농후하다. 다만 남쪽의 경우, 김대중 전대통령이라는 망상에 빠진 악단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얼마만큼 빨리 합리적 판단능력을 회복하느냐에 따라 소생의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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