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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정말로 김윤규 전 부회장이 대북사업 일선에 복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김윤규 문제를 거론하며 현대와의 대북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북한은 표면상 신의(信義)의 문제를 내세웠다. 그러나 약속과 합의를 어기고 뒤통수 치기를 서슴없이 해왔던 북한이 신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결국 북한에게 ‘김윤규’는 현대와 갈라서는 명분일 뿐이다. 어차피 현대와 일정 정도 선을 긋고 싶었는데, 울고 싶던 차에 뺨을 때려준 격이다.
북한이 현대와 선을 그으려는 건 완전히 갈라서겠다는 뜻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현대 이외의 경협 파트너를 만들어내 ‘충성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북한이 개성관광사업을 남한의 롯데관광과 손잡아보려 시도했고, 백두산시범관광은 관광공사에만 공문을 보내왔다.
현대로부터 얻어낼 만큼 얻어냈고, 더 크게 얻자면 이젠 다른 파트너를 끌어들여 ‘경쟁’을 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지극히 단순한 시장경쟁의 원리를 북한은 영악하게 깨달아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현대의 잘못은 신의를 어긴 것에 있지 않지 않고, 이렇게 영악한 북한을 너무 신의로만 대하면서 낙관한 것에 있다.
北, 현대 이쯤 해서 만족하라는 의미
북한은 채널을 다양화해 최대의 이익을 챙기는 수법을 대북식량지원 문제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최근 북한은 WFP의 식량지원을 개발복구 방식으로 전환하고 식량분배 모니터링을 위해 상주해왔던 직원의 철수도 요구했다. 북한 내 인도지원 NGO의 철수도 함께 요구했다.
그 뒤로, 식량을 지원해주는 WFP에서 식량을 받는 입장의 북한에게 ‘제발 받아달라’고 애원하는 희한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WFP는 북한의 식량이 그렇게 풍족하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북한은 상대의 이러한 선의를 이용해 ‘남한에게 더 많은 쌀을 더 쉬운 방법으로 받고 있는데 까다롭게 굴지 말라’고 협박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난 9월 1일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마커스 놀랜드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원과 스티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굶주림과 인권: 북한 기근의 정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남한의 대북식량지원을 WFP로 단일화할 것을 제안한 바 있는데, 바로 북한의 이러한 수법에 넘어가지 않기 위한 방안이다.
다시 북한의 ‘현대와의 사업 전면 재검토’ 문제로 돌아와보자.
북한은 현대가 대북사업을 완전히 포기하기는 힘들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현대의 입장에서는 그 동안 투자해왔던 비용이 있기 때문에 극단적 최악의 상황이 아니고서는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대북사업을 제로(0)로 돌릴 수 없다. 그것은 현정은 회장 개인의 결단으로 될 문제도 아니다.
따라서 이번에 아.태평화위는 대변인 담화 형태로 발표된 입장은 현대는 이쯤에서 만족하고 물러나라는 최후 통첩이다. 지금 금강산 관광인원을 절반으로 줄여놓은 상태지만 소액이라도 어떻게든 이득을 취하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반면 투자비용을 회수해 나가야 하는 현대의 입장에서는 손해가 크다.
다른 기업도 ‘토사구팽’ 뻔해
현대로서는 이 상황을 일단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한 정부도 현대에 우호적이지는 않다. 남한 정부로서는 현대든 어느 기업이든 북한과의 대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멘텀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특정 기업과 북쪽이 독점적 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정부 정책이 거기에 자동적으로 귀속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해결방안의 하나는 북한의 이러한 의도를 다른 기업에서 깨닫고 ‘러브콜’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하거나 남한 정부의 밀어주기에 편승해 북한의 새로운 파트너로 나선다면 현대와 같이 ‘토사구팽’의 운명에 처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현대가 더욱 강력하게 나가는 것이다. 상당한 손해가 있겠지만 금강산 사업을 당분간 완전 철수하는 대응도 필요하다. 그럴 수도 있다고 북한은 이미 계산해 두었겠지만, 가능성을 낮게 두었을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당황할 것이다. 앞으로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겠다는 교훈도 얻을 것이다. 이왕에 이렇게 뒤틀린 마당에 강경에는 더 큰 강경으로 맞서는 뚝심이 요구된다. 그것이 북한을 상대로 이기는 방법이다.
덧붙여, 북한은 이번에 현대그룹 관계자와 한나라당 인사와의 인척관계 관계를 들먹이면서 한나라당 음모설, 그리고 미국의 대북관계 속도조절에 관한 언급을 예로 들며 미국 배후설까지 거론했다. 북한의 워낙 상투적인 선전내용들이라 일고의 가치도 없다. 입장을 정리하는 글을 북한 통일전선부 소속 작가들이 작성하면서 구색을 맞추느라 끼워 넣었을 것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