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혁명 혈통계승’ 3대째 이어갈 수 있을까?

2008년 8월 김정일의 와병설이 나온 이후 후계체제를 두고 여러 가지 가설(假說)이 제기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정일의 세 아들 중 한 사람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과 집단지도체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후계구도에 대한 논의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이 있다.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로 이어진 북한체제가 과연 얼마나 지속성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로서,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가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을 불식시키고 후계구도에 대한 논의를 차단이라도 하려는 듯 금년 들어 북한의 방송 매체들은 이틀이 멀다하고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최근 모습을 보노라면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분명히 신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김정일의 후계구도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다. 독재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권력을 손에서 놓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후계를 준비해야 한다.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진 세습 형태의 통치권력 승계가 전근대적이고 현실 사회주의체제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지만, 북한에서는 이를 실현시켰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혈통’에 의한 혁명의 ‘계승’을 선전하고 사상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김정일은 그의 아버지 김일성에 못지않게 신(神)처럼 우상화되고 현대판 봉건왕조의 전제군주로 군림하고 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는 독재체제 중에서도 개인지배의 가장 나쁜 형태로 권력의 화신이 된 것이다.

오로지 1인에게 체화된 권력에 대한 우상숭배는 북한의 권력엘리트들을 자기 보호의 최면술에 걸리게 만들었다. 북한의 명목상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이 ‘비범한 사상 이론적 예지’, ‘노숙하고 세련된 영도예술’, ‘숭고한 인덕’ 등 최상의 수식어를 동원해 김정일을 “희세의 위인”이라고 찬양한다.

김정일의 후계구도는 바로 이러한 비정상적인 ‘북한식’ 체제가 계속될 것인가 또는 변화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김정일 이후를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북한의 당과 정부의 대변지나 방송 등을 통해 드러나는 김정일의 생각은 역시 ‘혈통의 계승’이다. 후계구도를 ‘대를 잇는 혁명’의 논리로 포장하고 있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대를 이어 권력의 정점에 올라 이른바 ‘유일지배체제’를 고수해온 것처럼 그러한 ‘전통의 계승’을 “혁명의 명맥과 사회주의의 전도”와 관련시키고 있다.

김정일의 통치 기간이 “백두의 전통”을 이어온 기간이며, “수령이 이룩한 전통을 굳건히 고수하고 계승해 나가는 길에 조국과 혁명의 밝은 미래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제군주적 독재자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권력 불안감의 발로는 자기 가계로부터 후계자를 찾는 것이다.

김정일도 이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대를 이은 혁명’의 논리는 사회주의 혁명의 논리가 아니라 바로 개인 권력의 계승 논리이다.

그런데 아무리 북한체제가 “인민대중 중심의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이며 “밝은 미래”가 있다고 주장해도 과연 북한의 ‘혁명’은 대를 이어 나갈 수 있는가. 대답은 ‘노(No)’이다.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해본다.

무엇보다도 북한체제를 지탱해나가는 것이 스스로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김정일 주변의 소수 지배층 이외에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이 부상하는 까닭은 가족관계로부터 자식들의 후견자를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스탈린 이후의 소련, 모택동 이후의 중국을 보더라도 압도적 권력을 향유하던 독재자 시대가 끝난 이후 개인지배의 영향력은 크게 쇠퇴한다. 그 필연적인 결과는 권력 내 파벌(factionalism)의 현재(顯在)화이다.

둘째, 김일성-김정일은 하나로 묶여진 권력이다. 김정일 시대에도 김일성은 신화화된 권력으로 살아있다. 북한에서 ‘세대와 세기’를 이어 3대 권력 승계를 한다고 해도 새로운 통치자가 김정일처럼 행동하기에는 시간과 자원이 너무 부족하다.

김정일의 아들을 아무리 김일성-김정일과 일체화시키려 해도 김정일이 누렸던 행운을 가질 수 없다. 더욱이 김정일이 남겨줄 ‘강성대국’은 그의 희망처럼 문을 열기도 힘든 것이 현재의 북한 사정이다.

셋째, 사회주의체제에서 권력의 성공적인 계승자는 대체적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 권력의 계승자가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보유하여 전략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획득했다고 믿는 지도자라면 김정일 이후의 북한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는 김정일과 같은 극단적으로 개인화된 권력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공리적 이데올로기로 기존 권력집단의 충성심을 유지시키거나 그들과 상호 이익을 교환할 수 있는 실용주의적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북한체제 아래서는 그러한 탄력성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마지막으로 북한 사회의 저변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는 변화 욕구의 점증적인 분출이다. 아직은 잠재성이 강하다고 하나 만연한 부정부패, 상업행위에 대한 선호, 부에 대한 인식의 변화, 하부 및 중간 권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이데올로기에 대한 피로감 등 ‘우리식 사회주의’체제의 해체를 유발하는 현상이 증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강압적 수단과 위기감 조성으로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후계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보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에 북한 체제가 존속할 수 있는지 여부에 더 신중한 관심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권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