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로 위장한 여간첩(원정화. 34)이 적발돼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합동수사 과정에서 그의 행각과 실체가 속속 밝혀지면서 군과 경찰, 국가정보원 및 군 기무사령부 등 공안당국의 안보불감증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군을 비롯한 공안당국의 안보의식과 안보교육에 ‘총체적인 점검’이 불가피해 보인다. 더불어 최근 우리 국민들의 안보의식 또한 심각한 수준이어서 국가차원의 대대적인 대공(對共)시스템 점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6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공개한 ‘2008 청소년 국가관·안보의식 여론조사’에서는 간첩 활동과 관련, 응답자의 70% 이상이 ‘간첩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한국을 비난하고 북한을 칭찬하는 사람’을 발견할 경우 12.7%만이 경찰 또는 대공 수사기관에 신고하겠다고 대답했다.
또 ‘우리나라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를 묻는 질문에 미국(28.4%), 일본(27.7%)을 지목한 응답자가 북한(24.5%)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던져줬다.
이 같은 총체적 안보의식 부재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난 10년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대북정책에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0년 대북정책은 ‘북한이 남침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며 “이 같은 대북 인식의 오류 때문에 대북정책의 실패와 더불어 국민 안보의식이 해이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간첩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북한은 남침 의지와 능력이 있다”며 “북한이 미국이 아닌 남한의 공산화 통일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60년 대한민국 건국사를 통해 증명이 됐는데 지난 정부는 애써 이를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치안정책연구소 김윤영 박사는 “지난 10년간 우리는 ‘북한 눈치보기’로 일관했다”면서 “특히 햇볕정책이 강조되면서 안보정책이 하나의 아류처럼 인식돼 자동적으로 안보의식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꼬집었다.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센터장을 역임한 송영선 친박연대 대변인은 “햇볕정책은 북한, 특히 김정일을 정확하게 모르고 내놓은 정책”이라며 “이번 간첩사건은 김정일에게 햇볕을 주면 선군정치를 바꾸고 남측과 힘을 합쳐 진정한 가슴을 내놓고 손을 잡을 줄 알았는데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일면”이라고 말했다.
송 대변인은 특히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을 상기시키며 “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도 없고, 갈등도 없다’고 말했다”면서 “대통령이 이렇게 얘기하는데 무엇 때문에 상대방을 경계하는가. 국민의식이 이래서 해이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부가 등한시 했던 안보교육을 비롯한 총체적인 안보시스템의 대대적인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그동안 대남 공작활동을 지속해왔다”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대북 정보 수집과 분석이 필수적인데 지난 정부는 국정원, 기무사 등 정보기관의 이 같은 역할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세계 어느 곳도 국가기밀, 방첩, 기본질서 보호, 정보 분석, 방산업무 등의 임무를 포기하는 나라는 없다”며 “특히 우리를 위협하려는 적대국인 북한이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보기관의 불능화된 기구 등을 복원해 조속히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지난 10년의 대북정책에 따라 무력화된 안보정책으로 감상적인 통일·대북접근으로 안보환경도 무력화됐다”면서 “하루 빨리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안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박사는 간첩사건이 군의 안보상황에 허술함을 보여줬다면서 “군 장병들의 정신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군 안보강연에 출연했던 탈북자들에 따르면 일반 병사들은 북한에 관심이 거의 없고, 장교들은 안보강연을 ‘세뇌교육’ 쯤으로 폄훼, 심지어 북한을 두둔하기까지 한다고 전해진다.
송 대변인은 “원 씨가 북한을 찬양하거나 CD를 틀어도 기무사가 주의만 줬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며 “국정원 자체에 국가의식이 확실한지, 아와 적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 건지, 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원칙을 갖고 있는지, 의심을 갖고 재정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적발된 간첩이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침투한 만큼 탈북자 심문 및 정착과정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통일연구원은 이금순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은 통일연구원 온라인 시리즈 ‘탈북자 위장 간첩 사건과 탈북자 대책’이란 발표문에서 “위장탈북자를 최대한 식별해 낼 수 있는 기법이 보다 강화되어야 하고, 탈북자 입국심사가 보다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탈북자에게는 국내입국자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보호담당관제도(거주지·신변·취업)가 운영되고 있지만 한계점에 다달았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년간 입국자가 소수이던 시기와 달리 신변보호는 700여명의 보안경찰이 담당하고 있어 경찰 1인당 12.6명을 보호하는 체계로 변화되었다”며 이미 이러한 방식은 한계에 와있음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박사는 “결국, 안보환경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기관, 국정원, 기무사, 보안경찰 등의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탈북자가 하나원을 나오면 보안경찰이 정착도우미 역할을 하는데 인원과 예산이 많이 감축돼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이어 “탈북자 정착에 있어서도 1 대 1 멘토제도를 도입하고, 고령화 사회에 따른 노인들을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탈북자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탈북자는 향후 통일과정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통일한국의 초석”이라면서 “이번 위장탈북 간첩 사건이 탈북자 사회 전체의 문제로 매도돼 탈북자의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북한이 과거 태도에 비춰볼 때 이번 사건 또한 ‘남한 정부에 의한 조작사건’이라고 규정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당분간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간첩사건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국민여론도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여 당분간 새 정부가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이끌 가능성도 낮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이번 사건에 대해 ‘조작이다’‘터무니 없는 거짓’이라고 할 것”이라며 “최근 남북관계와 마찬가지로 갈등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씌우려 할 것으로 보여 남북관계의 경색기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번 사건은 한국정부의 ‘자작극’ ‘날조’로 비난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각종 대외 선전매체를 통해 ‘촛불 정국’을 무마하기 위해 조작된 반북 날조사건이라고 규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때문에 김 박사는 “단기적으로는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놓일 것으로 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핵문제로 인한 국제적 고립, 식량난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북한이 대화 등을 통해 화해의 손짓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