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신고 합의 배경과 득실

북한이 미국과 3개월 넘는 줄다리기 끝에 핵신고 방법에 합의한 것은 부시 행정부의 임기를 감안할 때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시한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에 ‘간접시인’이라는 방식의 합의를 통해 ‘합의’에 따른 실익을 챙기는 동시에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핵확산 의혹에 대한 ‘간접’시인 방식으로 정치.외교적인 체면을 세웠을 뿐 아니라 여의치 않을 경우 다시 뒤집을 수 있는 탈출구도 마련해둔 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그러나 비핵화의 길을 더욱 깊숙히 떼어놓음으로써, 국제사회의 대북 ‘비핵화 연대’를 감안할 때 과거로 돌아가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간접시인 방식의 경우, 북한이 미국의 혐의 제기를 수용했다고는 하지만 두루뭉수리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앞으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서로 다른 해석을 통해 미국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근식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간접시인을 했다고 해서 결코 UEP와 시리아 핵협력을 인정했다는 것은 아니며 이들 사안은 추후 3단계 협상과정에서 오히려 북한의 입장을 밝히는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정치.경제적으로 얻을 것이 많기 때문에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타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비공개 양해각서에 미국이 북한의 신고사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삽입한 것은, 북한으로선 이른바 ‘고백외교’의 악몽이 핵신고에서도 재연되는 것을 막는 예방장치인 셈이다.

북한은 미국과 핵신고 협상에서 신고를 했다가 그것이 대북 압박에 이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식의 불신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과거 일본인 납치사건과 관련, 이른바 일부 납치사실을 시인하는 ‘고백외교’를 했다가 그로 인해 일본과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북한이 이번 합의를 통해 얻을 이익은 실리.상징 양면에서 막대하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해제가 이뤄지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불법국가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정상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정치적 발판을 얻을 수 있음은 물론 그동안 미국과의 교역 확대를 막아온 주요한 장애물의 하나를 치우게 된다.

김근식 교수는 “부시 행정부가 적극적인 대북 협상 의지가 있는 만큼, 북한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의 문제를 미국의 다음 행정부까지 끌고 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며 “북한은 부시 대통령의 임기내에 챙길 것은 챙기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등으로 인해 얻을 경제적 이득은 앞으로 오랜 뒤의 일이지만, 이번 합의로 인한 목전의 실리도 크다.

6자회담 5개국의 95만t에 해당하는 에너지.경제지원이 다시 속도를 내 북한 경제의 숨통을 죄고 있는 에너지난 해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고, 특히 미국에서 지원될 50만t의 식량은 북한 내부의 극심한 식량난을 완화해줄 뿐 아니라 북한의 대남 전략에도 도움이 된다.

북한이 핵문제와 북미관계에서 진전을 이룰 경우, 대북지원과 남북경협에서 상호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는 판단도 이번 합의에서 북한의 고려사항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앞으로도 김태영 합참의장의 북핵 대책 발언에 대한 사과와 6.15공동선언 및 10.4남북정상선언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내세워 대남 대립자세를 유지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김영삼 정부 때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로 재미를 본 북한 입장에선 남한 정부가 북한의 ‘냉대’를 받으면서도 미국의 ‘압력’에 따라 대북지원 등에 자연히 끌려들어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하고 미국을 따라간다고 하니까 북미관계가 진전되면 싫든 좋든 대북지원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 입장을 정리했을 때 이미 북미관계 해결 전망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 북미관계와 핵문제가 진전될 때마다 국제사회의 대북지원과 경제교류가 확대됐다는 점에서, 북한은 이번 합의를 통해 미국 이외의 나라들에서도 부수적인 경제실익을 챙길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6자회담 합의의 이행으로 나타나고 있는 동북아 정세의 전환적 국면은 조선(북)의 경제부흥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며 “세계 각국과의 경제적 협력.교류를 보다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이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며 그 첫해인 올해 주민들에게 경제건설 매진을 촉구하고 나선 상황에서, 이번 합의는 주민들에게 그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내부 선전효과도 북한에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은 정치.외교적으로뿐 아니라 경제적 실익을 챙기려면 미국에 조금은 양보를 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며 “남한에서 쌀과 비료의 지원이 중단된 상황에서 당장 국제사회의 식량과 에너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간접’표현으로라도 미국이 제기한 UEP 등의 의혹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 6자회담이 동력을 완전 상실하게 돼 6자회담 파탄의 책임을 면할 수 없고, 그렇게 될 경우 미국내를 비롯해 국제사회로부터 지금까지보다 더 큰 압박과 고립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엔 미국과 대립하더라도 한국과 중국에 기댈 수 있었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은 또 최근, 2006년 핵실험 이후 소원해졌던 북중관계 복원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6자회담의 동력 유지에 적극 나서고 있는 입장을 외면할 수도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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