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신고 이후’도 美조치따라 속도조절

미국과 담판 방식을 통해 핵신고의 고비를 넘긴 북한은 앞으로도 ‘행동 대 행동’ 원칙을 내세워 미국의 조치를 봐가며 비핵화 속도를 조절해나가는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특히 9일 외무성 대변인의 말을 통해 싱가포르 북미회담 결과를 “싱가포르 합의”라고 부르고 이번 회담이 “북미회담의 효과성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강조해, 앞으로 비핵화 과정도 북미 양자채널 위주로 진행시켜 나갈 것임을 예고했다.

북한은 우선 미 행정부가 싱가포르 회담 결과를 최종 승인, 당면 목표인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조치가 이달중 곧바로 이뤄진다면 폐연료봉 인출속도를 늦췄던 불능화 작업을 가속화하면서 핵신고에 따른 검증 작업에도 적극 호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앞으로 북한의 행보와 관련해 주목할 대목은 과연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시리아 핵협력설에 대한 강경파의 반대여론을 뚫고 테러지원국 해제를 비롯한 상응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 여부”라며 “북한은 ‘행동 대 행동’원칙을 강조해온 만큼 이 대목에서 진전이 없으면 2단계 조치의 마무리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2.13합의’ 때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와 핵신고를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및 적성국교역법 적용의 중단 등 조치와 맞바꾸기로 결심했었던 만큼, 북미 양측의 정치적 필요성까지 감안하면 2단계까지는 대체로 무난하게 마무리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전과 서브프라임 사태라는 대내외 실정을 조금이라도 상쇄할 수 있는 치적으로자신의 임기내에 북핵문제를 최소한 클린턴 행정부때보다는 진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후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들어간 상황에서 미국과 대화와 협력의 틀을 유지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식량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정치적 안정의 기반을 마련하려 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부시 행정부는 핵신고 문제를 마무리한 만큼 본격적인 대선국면에 들어서는 올해 하반기에는 북한에 대한 관리모드로 들어갈 것”이라며 “북미 양측은 불능화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신고 내용에 대한 검증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검증 과정에서, ‘창조적 모호성’을 발휘해 합의한 핵 신고가 북미 양측의 상이한 해석으로 인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고, 특히 북한 군부가 특정한 검증 방식이나 절차를 치욕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장애를 조성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2단계가 마무리되더라도, 북한이 최종 3단계 논의에서 어떤 자세로 나올지는 확언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3단계에 관한 본격 논의는 현재의 부시 행정부와 하기보다는 오는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고 차기 행정부와 하려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핵폐기 단계에 들어서면 사안이 지금까지보다 복잡할 뿐 아니라, 북한이 폐기의 대가로 얻어내려고 하는 보상물이 엄청날 것이므로, 물러나는 부시 행정부와 논의를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할 것이기때문이다.

김성배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은 3단계 논의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보상을 요구하려 들 가능성이 있다”며 “정치.경제적 상응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한 본격적인 협상의 시작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폐기 논의가 본격 시작되면 북한은 기보유 플루토늄의 북한 밖으로 반출, 핵시설의 해체와 핵무기의 처리 등 사안마다 특유의 ‘살라미 전술’을 구사, 최대한의 이익을 확보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 및 보유의 이유로 외부세력, 특히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거론해온 만큼, 3단계 과정의 본격 진입을 위해 한미합동군사연습의 중단은 물론 평화협정의 체결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김연철 연구교수는 “9.19공동성명은 북한의 핵폐기에 상응해 경제지원과 관계개선, 평화체제라는 세 가지 조치를 명시하고 있다”며 “경제지원과 관계개선에서는 상응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데 비해 평화체제에선 성과가 없는 만큼 북한이 이 대목에 요구를 집중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1994년 북미간 제네바 기본합의에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가로 미국이 지어주기로 했던 경수로 건설도 북한이 다시 본격 요구하고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김성배 책임연구위원은 “핵폐기 단계 논의에 들어가면 북한은 그동안 자제해온 경수로 건설 요구뿐 아니라 근본문제들을 제기하고 해결하려 들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핵폐기 단계가 또 다시 여러 단계로 나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북한이 미국과 협상에 주력하면서 통미봉남술을 구사해 6자회담에서 남한 배제론을 노골화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와 북한올림픽위원회가 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6차 국가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ANOC) 총회에 나란히 참석했지만, 북측은 남측의 거듭된 회동 요청에도 거부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모양이 6자회담 석상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작년 납치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일본의 6자회담 배제론을 펼치고 6자회담 틀에서 북일 양자회담에도 응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때문에 남한과의 접촉과 협의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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