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시설 복구 개시…中 ‘해결사’ 나설까?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복구작업에 착수해 북핵문제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한·미 외교당국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다.

북한이 ‘핵시설 복구’라는 강경 카드를 들고 나온 것에 대해 맞대응할 경우 그동안 어렵사리 진전돼온 6자회담의 성과가 송두리째 허물어 질 수 있다는 입장을 한·미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또한 한·미 외교당국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중재 가능성에도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핵시설 복구 조치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북한의 조치에 대해 여러 상상을 해서 오버-리액트(과잉대응)하는 것은 상황관리에 적절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6자회담 프로세스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다”면서 “우리는 (북핵 불능화에 있어서) 계속 진전을 봐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해 북한의 이번 조치가 6자회담의 파국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미는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불능화에 대한 상응조치인 경제·에너지 지원을 계속하기로 했다. 유 장관은 이날 “현재로선 계획(10월말까지 지원 완료)대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한·미는 북한을 협상 틀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신속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미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 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5일 베이징에서 회동, 대응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 본부장은 6일에는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과도 만나며 일본, 러시아 측과도 조만간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의 중국 체류기간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베이징에 나타날 지도 주목된다.

이에 따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비록 북한이 ‘벼랑끝 전술’에 나섰지만, 미국은 검증체제 확립 전에는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북핵 6자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중재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다만, 중국이 중재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북한과 미국 측의 입장차가 분명해 그 결과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미국 대통령 선거 전에 ‘외교적 성과’를 기대하는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검증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원칙이지만, ‘先검증체계 後테러국 해제’라는 입장도 확고하다. 북한 역시 ‘현장 긴급사찰’ 등이 포함된 미국의 검증체계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고, 테러지원국 해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입장차가 분명하다.

따라서 중국이 중재에 나서더라도 ‘검증체제’에 대한 미북간 입장차로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미·북간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검증체제 수립’을 두고 미·북간 공방만 오갈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은 4일 ‘데일리엔케이’와 통화에서 “북한이 당장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위한 복구작업에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에 따라 중국의 중재를 통한 타결 가능성이 아직까지 열려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연구실장은 “미국과 북한이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대한 입장차가 분명하기 때문에 ‘절충점’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이 중재할 경우 북한은 지금의 복구 작업을 일시 중단하고 미국은 검증체제 수립 논의를 시작하자는 식의 조금씩 성의를 보이는 수준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연구실장은 이어 “미북간 검증체제 수립과정에서 협상이 시작되더라도 북한이 미국의 ‘전투적 사찰’(직접·무작위 현장사찰) 등의 강도 높은 사찰 요구를 거부할 것”이라며 “이번 중국의 중재는 비핵화 실무그룹 수준의 협상체제를 구축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