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기록 美에 넘겨…검증의 벽 넘나?

북한이 8일 플루토늄 생산에 사용했던 영변 원자로의 공정일지 등 북핵 관련 서류들을 미국 측에 넘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북핵 정국의 변화가 주목된다.

북핵문제는 그 동안 ‘완전한고 정확한’ 핵 프로그램 신고를 두고 미국과 북한이 대립하는 가운데, 북한이 ‘10·4공동성명’을 통해 합의했던 작년 연말까지의 신고 시한을 넘기면서 지금까지 4개월 이상 교착상태에 빠지게 됐다.

임기 내 북핵문제 해결을 목표로 대북 강경책에서 대화를 중시하는 유화책으로 전환했던 부시 행정부는 이후 양보에 양보를 거듭, 베이징→싱가포르 미·북 회담을 거쳐,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이 평양을 두 차례나 파견하면서 북핵 돌파구 마련에 힘을 쏟았다.

그 동안 미국과 북한은 플루토늄 핵프로그램에 집중, 극적인 타협점을 찾아 마침내 북한이 관련 자료를 미국 측에 넘김으로써 북핵 2단계인 신고문제를 넘어 검증단계를 거쳐 3단계인 핵폐기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美, 北 제출 자료 ‘정확성’ 검증에 주력할 듯 = 미 국무부는 8일 방북중인 성 김 한국과장이 북한 측으로부터 영변 원자로의 과거 플루토늄 생산과 관련된 문서를 전달받았다고 공식 확인했다.

AP통신은 8일 미 국무부 관리의 말을 인용, “이 서류들은 북한이 얼마만큼의 플푸토늄을 생산했는지, 핵 신고서의 내용과 일치하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숀 매코맥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앞으로 수주간 이들 문건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아주 세밀하게 이 과정을 끝마칠 것”이라며 “이들 문건이 (북한의) 핵신고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와 관련된 3가지 우선순위는 검증, 검증, 검증”이라고 밝혀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은 8일 북한이 미국에 제출한 핵신고서는 모두 1만8천쪽으로 7박스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라고 익명의 국무부 관리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NYT는 이날 국무부 성 김 한국과장이 평양에서 전달받은 핵신고서류는 1990년 이후 핵원자로의 기록들에 관한 것이며 1990년과 2003년 2005년에 시행한 핵무기용 플루토늄 추출 기록도 담겨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미국은 당분간 북한이 제시한 자료의 ‘정확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의문 해소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북한은 이번에 미국에 건넨 관련 자료에서는 플루토늄 추출량과 관련, 기존 입장보다 조금 높은 30kg대 초반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50kg 안팎으로 분석하고 있는 미국과의 입장차를 어떤 식으로 좁힐지 주목된다.

일단 북한이 미국에 가동일지 등의 자료를 제출했지만,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해 정확성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은 “김정일은 핵무기를 자신의 생명줄로 생각하는데 핵무기 생산량을 유추할 수 있는 ‘공정일지’를 정확하게 보고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더구나 이번 제출 자료에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대(對)시리아 핵협력에 관련된 내용은 빠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이 같은 신고내용만으로 부시 행정부가 행정부 및 의회 내 강경파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北,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가시화 = 북한이 핵관련 자료를 미국에 넘김에 따라 미국도 ‘행동 대(對) 행동’원칙에 따라 6자회담에서 합의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 약속사항 이행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은 당장 이러한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먼저 북한측 자료에 어느 정도 신빙성과 유용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수주 내 관련 자료에 대한 검증을 거쳐 미국이 파악하고 있는 정보와 일치하면 관련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부시 대통령이 북한 자료를 분석한 뒤 의회에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일본이 납치문제 해결 전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는 있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때문에 미국은 일본을 적극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인 피터 벡 씨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네그로폰테 부장관이 일본을 방문한 것은 북한의 핵 신고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설명하고, 6자회담 재개 일정 등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본 당국자들을 만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에 대한 일본의 이해를 구할 것이라고 VOA는 9일 전했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플루토늄 핵프로그램에 대한 관련 서류를 확보한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미 의회에 건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전 연구위원은 “미 의회는 북한의 플루토늄 핵신고서 내용과 더불어 UEP 및 시리아 핵협력 사항에 대한 신고와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검증 방법 등을 고려할 것”이라며 의회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승인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북핵 6자회담 재개, 신고서→검증→3단계 로드맵 제시될 듯 = 미국과 북한의 핵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북한이 이달 중에 의장국인 중국에 핵신고서를 제출할 경우 한국 등 관련국들은 1~2주 정도 검토 후 이달 말께 베이징에서 회의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에선 핵신고서에 대한 승인 절차를 거쳐 ‘검증’ 방법과 절차 등에 대한 협의와 함께 북핵 폐기 및 북미간 관계정상화 등 북핵 3단계 이행을 위한 로드맵과 구체적인 이행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WSJ는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 해체를 TV로 중계키로 하는 등 더 적극적인 조치들을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만약 핵시설을 해체하는 장면이 전 세계로 중계될 경우 북핵 문제는 당분간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가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기대대로 북한이 완전하고 정확한 핵프로그램 신고를 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부시 행정부에서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가 성실치 못하다는 결론에 다다를 경우 북핵 문제 진전에 대한 소망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미국 정부로선 북한 핵폐기를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선 의회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UEP와 시리아와의 핵협력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행정부와 의회의 일부 반발 기류도 불안한 요소다.

전 연구위원은 “북한이 제출한 문건 등을 통해 플루토늄 추출량 등을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최종확인을 위해서 현지답사 등의 실사가 필요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서 “다만 플루토늄 신고만을 가지고도 6자회담 재개 명분은 충분하므로 회담은 조속한 시일 내 개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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