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개발 어떤 모델 쫓나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은 과연 어떤 나라의 핵정책을 모델로 삼고 있을까.

북한은 핵 개발과정과 핵 보유국 지위 확보전략에서 대체로 파키스탄의 경험과 기술적인 도움을 받아 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그러나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데는 파키스탄과 상이한 여건에 놓여 있으며, 이란과의 핵개발 공조 움직임도 제한적인 범위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핵문제의 최종 해결 방식에 있어서도 국제사회로부터 리비아식 해법을 권고받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수용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北 핵개발, 파키스탄 모델 벤치마킹 =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파키스탄의 경험을 벤치마킹한 측면이 상당부분 발견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의 핵개발 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 국제사회로부터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 하는 전략이 파키스탄과 유사한 측면이다.

파키스탄은 이웃 경쟁국인 인도가 1974년 최초의 핵실험을 단행하자, 당시 알리 부토 정부는 유럽 유명대학 강단에서 15년 동안 활동하다 귀국한 압둘 카디어 칸 박사를 책임자로 공학연구소를 세워 핵 개발에 착수했다.

미국은 파키스탄의 핵개발 조짐을 철저히 감시하면서도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에서 미국의 반소련 ‘지하드'(聖戰)를 돕고 있다는 점 때문에 침묵을 지켰으나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1889년부터는 핵 개발 중단 압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거듭된 정권 교체를 겪으면서도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을 줄기차게 추진, 1998년5월에는 인도와 함께 핵 실험에 성공한 뒤 핵 보유국으로 부상했다.

파키스탄은 결국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9.11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 발발시 미국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준 대가로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북한은 이같은 파키스탄의 핵개발 과정을 면밀히 주시해왔고, 북한을 10여차례 방문한 칸 박사로부터 핵개발 관련 기술을 이전받아 핵 개발을 추진해왔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과 파키스탄은 서방국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을 추진,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과정 등이 유사하다”면서 “북한은 1970년대 중반부터 파키스탄 칸 박사로부터 핵 개발과 관련해 깊숙이 도움을 받으며 전반적인 벤치마킹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파키스탄은 대 인도 안보차원에서 핵 개발을 추진한 반면 북한은 체제유지라는 정치적 목적이 강하다”면서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과정에서 미국의 없어서는 안될 동맹국이라는 지렛대가 있어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았지만 북한은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악의 축’ 北-이란, 핵정책 공조하나 = 북한은 경제적, 외교적 위상이나 여건이 크게 다르긴 하지만 이란과 핵정책에 있어서 공조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 이란은 먼저 핵 개발을 통해 노리고 있는 1차적인 목표가 대치하고 있는 미국의 관심을 끄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으며, ‘악의 축’으로 함께 지목받은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서로 의견이나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이란은 아직 핵실험 단계에 이르진 못했지만 국제사회의 우라늄 농축 중단 요구를 거부하며 ‘서방 강대국이 독점하는 핵 기술을 확보하고 부수적 과실로 에너지를 얻는’ 목적으로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북한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군사전문지인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최근 북한이 핵실험 강행시 이란과 실험결과를 공유하거나 이란 관계자들을 옵서버로 파견하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으며 이란은 자체 핵 개발이나 핵실험을 하지 않고도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실험을 실시한 것과 똑같은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이란은 북한처럼 고립되는 것을 원치 않아 NPT(핵무기비확산조약)에 잔류한 채 공개적인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 등이 달라 ‘벼랑 끝’으로 달리고 있는 북한의 핵정책과는 일정한 거리를 둘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北 리비아식 해법은 ‘희망사항’ =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리비아식 해법에 대한 국제사회의 권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는 1969년 카다피의 쿠데타 이후 강경 반미 노선을 표방한 뒤 핵 개발도 추진, 미국을 겨냥한 각종 테러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외교.경제적 제재를 받았으며 1980년대 두 차례나 미국의 폭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리비아는 2003년 12월 전격적으로 핵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포기를 선언한 뒤 서방과의 관계를 복원, 미국은 지난 6월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동시에 26년 만에 외교관계를 정상화 하고 각종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리비아의 핵개발 포기와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한 지원 확보사례를 북한 핵문제의 해결 대안으로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개발 최종 목적이 체제유지에 있는 이상 핵개발을 포기하는 것은 생존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먼저 핵을 포기하게 한 뒤 지원을 받는 리비아 방식은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 배경에는 미국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면서 “외부 세계의 체제 유지 보장에 대한 명시적인 신호가 없이는 리비아식 해법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미국에 대한 불신이 깊고 자칫 정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일방적인 고백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북한이나 미국이 감정을 앞세운 강(强) 대 강 대결 열기를 식혀 객관적인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과 다른 나라 핵 개발과정 특징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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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징 │ 북 한 │ 이 란 │ 인 도 │ 파 키 스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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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시기│2006년10월 │ 미실험 │1974,1998년 │ 1998년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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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T관련 │2003년1월 │가입국 유지 │ 가입 거부 │ 가입 거부 │
│ │탈퇴 선언 │(1970년가입)│ (미가입국) │ (미가입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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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보유 │2005년2월 │우라늄 농축 │1998년 │1997년핵무기│
│단계 │핵보유 선언 │시도 │핵보유선언 │제조능력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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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목적│핵억지력 │전력 생산용 │대 파키스탄 │대 인도 │
│ │구축 주장 │주장 │안보용 주장 │안보용 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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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유엔안보리 │유엔 제재 │미국, 2006년│이라크전쟁시│
│대응 │제재결의 │논의중 │3월 핵협정 │미국에 협조,│
│ │ │ │맺어 사실상 │사실상 보유 │
│ │ │ │보유국 인정 │국 지위 확보│
└────┴──────┴──────┴──────┴──────┘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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