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하층 1,400만…‘사회주의’는 없다

북한은 1960년대까지는 그나마 사회주의 인민의 나라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여러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김일성 유일사상의 나라가 되었다.

일반 주민들에게 ‘사회주의’란 복잡한 이론도 아니고, 그저 누구나 평등하게 같이 나눠 먹고 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실제로 1980년대까지 김일성-김정일 가족, 특권층 간부를 제외하면, 일반 사무직이나 노동자, 농민 등의 생활수준은 큰 차이 없었다. 또 그나마 밥은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다르다. 20년 전에 비해서 북한주민들을 생활수준을 기준으로 계층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가용 승용차를 가진 일부 부자도 있고, 하루 벌어 겨우 끼니나 때우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일어난 식량난은 북한 사람들에게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식량난은 북한사회를 엄청난 고통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3, 4년간에 걸친 식량난은 300만 명을 희생시킨 대참사였고, 또 북한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아사자 절대 다수가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북한의 최하위 계층에서 발생했다. 물론 체력이 약한 어린이, 노인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처음 배급이 중단되었을 때 북한 주민들은 몇 달만 견디면 국가에서 해결해줄 것으로 믿고 죽과 맹물로 허기를 채우며 이겨냈다. 그러나 배급은 6개월이 지나도 도무지 해결될 가망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그래도 50여년 동안 배급제에 의식이 길들여진 주민들은 당국의 말만 믿고 ‘좀 기다리면 배급이 되겠지’ 하면서, 팔 수 있는 것은 팔면서 식량을 구하러 다녔다. 이러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영양실조로 하나둘씩 쓰러져 가면서 4년동안 3백만명이 굶어죽었던 것이다.

당시 장마당 식량가격은 불과 6개월 단위로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94년 당시 월급(120원 정도)으론 쌀 1kg을 사면 그만이었다.

94년 여름부터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자강도 등 북한지역의 절반 정도되는 지역에서 대량아사가 발생했다. 아사자가 너무 많아 시체 처리와 꽃제비를 전문으로 관리하는 ‘9.27 상무’라는 비상설 기구까지 조직되었다.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릴 때 간부들은 식량배급을 별도로, 또는 식량공급소를 통해 몰래 타먹었다.

식량뿐 아니라 외국의 지원으로 들여오는 약품, 의류 등 지원물자를 장마당에 빼돌려 폭리를 취해 식량난 시기에 오히려 벼락부자가 된 사람도 있었다.

북한 주민들 대부분은 집에 있는 TV, 재봉틀, 장롱, 옷장 등 가구와, 심지어 불법행위인 집까지 몰래 팔아 식량을 사먹거나 장사밑천을 마련했다. 집을 팔았을 경우 온 식구가 모여앉아 식사를 한 다음 돈을 나누어 제각기 살길을 찾아 흩어진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각기 흩어진 식구들은 결국 꽃제비가 되어 떠돌이로 살다 굶어 죽었다.

또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콜레라 등 전염병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장마당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던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리면 장사를 못해 생계가 끊겼다. 또 쥐꼬리 만한 밑천까지 치료비로 날리고 끝내 꽃제비가 되어 죽었다.

하층 1,400만…그중 최하층 500만 명 하루하루 연명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배급에 의지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던 북한 주민들은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생존경쟁’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특권을 가진 간부들과 이와 결탁한 장사꾼들이 살아남고 일반 사무직 근로자, 노동자 농민들은 굶어죽거나 최하위 계층으로 주저앉았다.

남보다 일찍 장사에 뛰어든 사람들은 당장 끼니가 급한 사람들이 내놓은 가전제품과 가구를 헐값으로 구입해 비싼 가격으로 되파는 장사로 많은 돈을 벌었다. 또 간부들이 빼돌린 외부 지원물품(약, 의류, 생활용품 등)을 싼 값에 넘겨받아 장마당에 비싸게 팔아 많은 이윤을 남겼다.

여기에 외화벌이 기관 사람들은 주민들이 굶주림을 참고 캐낸 약초나 산나물 등을 밀가루나 설탕가루로 헐값에 바꿔 폭리를 취했다. 결국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 여기에 결탁한 장사꾼들은 상대적으로 부자가 되었고, 대다수 힘들게 끼니를 벌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난에 몰렸다.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초치 이후 당국은 장마당을 종합시장으로 활성화 했다. 장사도 그전보다 순조롭게 할 수 있게 되어 먹고 살기는 좀 나아졌다. 그러나 여기에 합류하지 못한 하층 주민들은 힘겹게 살고 있다.

이들 하층 주민들은 대략 14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북한의 인구는 대략 2천100만에 다소 모자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대북지원단체 ‘좋은 벗들’은 북한 식량위기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 진단을 통해, 식량배급 순위를 1순위부터 4순위까지 나누고 배급 4순위에 있는 일반 노동자(일반기업소 노동자, 교사, 의사, 서비스직 종사자 등) 600만 명과 농민 800만 명이 식량부족으로 생존위기층으로 보았다.

이중 소토지 농사와 장마당(종합시장) 소매장사를 통해 그나마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뺀, 나머지 최하층에 속한 사람들은 대략 5백만 명 정도로 보인다. 이들은 오늘도 하루하루 옥수수와 죽으로 연명하고 있다.

이 최하층 주민들은 소토지도 없고 생산수단(빵 기계, 사탕기계, 재봉틀 등등)도 없다. 이들은 만성적인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사회를 원망하며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北 계층분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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