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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을 통한 북핵 폐기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미북간 관계정상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두 나라는 ’10·3 2단계 조치 합의’를 이끌어 낸 데 이어 양국간 교류도 활발해 지는 양상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상당한 규모의 식량 제공을 검토하고 있는 사실도 우리 정부 당국자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 임박설은 미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외교채널을 통해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방북설 자체가 미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예고하는 징후로 볼 수도 있다.
라이스 장관 방북설과 관련해서도,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라이스 장관이 조만간 방북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솔직히 (고위층에서) 그런 대화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고 말해 가능성을 일축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북한과 외교관계 수립을 추진하며 ‘연락사무소’보다 높은 ‘대표부'(Representative Office)급’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RFA는 지난 11일 미 의회 소식통의 말을 인용 “미국은 아직 연락사무소 또는 대표부 중 무엇을 평양에 설치할 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대표부 수준의 외교관계 수립이 가장 큰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 정부 당국자는 “완전 난센스(total nonsense)”라고 일축했다.
종전선언 위한 정상회담 추진에 美 예민한 반응
정부간 교류는 아직 검토 수준이 대부분이지만 민간교류는 구체적인 왕래로 나타나고 있다.
이달 초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미국을 방문해 순회 시범공연을 가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미중 수교에 기여했던 ‘핑퐁외교’ 수준으로 평가하기엔 이르지만 양국 모두 스포츠 문화 교류를 통해 관계개선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미국도 뉴욕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을 위해 북한 측과 협의 중이다.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이 성사되면 음악에 관심이 많은 김정일이 직접 감상할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 공연은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의 막후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0·4합의와 함께 남북정상선언에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3자 또는 4자간 종전선언 협의를 위한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합의가 이뤄져 미국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이 연말 또는 내년 초에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종전선언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이 자연스럽게 만나 양국간 관계정상화를 위한 물꼬를 틀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관계 개선의 전제가 완전한 비핵화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단계적인 동기 부여는 필요하지만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비핵화 이후가 될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플루토늄 50kg 신고가 당면 과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지난 8일 “종전선언 또는 평화체제 논의의 선결조건은 북한 핵무기 및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폐기”라며 “연내 종전선언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미국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힐 차관보도 16일 호주의 싱크탱크인 시드니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에서 “북한이 소유한 ‘플루토늄 50kg’ 문제가 향후 6자회담 진전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북한이 플루토늄 폐기를 최종 결정하기 전까진 미국은 대북 관계정상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힐 차관보는 “아직 북한이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플루토늄 50kg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며 “동시에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되고 궁극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지난 10일 미 공영방송인 PBS ‘찰리 로즈 쇼’와의 인터뷰에서도 “북한이 이미 확보한 50kg의 핵물질을 포기할 때까지 완전하고 정상화된 외교관계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플루토늄 50kg’의 신고 문제가 향후 미북 관계정상화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선 북한이 얼마만큼의 플루토늄을 신고하느냐에 따라 북한의 ‘핵폐기 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 과정에서 ‘플루토늄 50kg’은 향후 미북관계 개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준치가 된 것이다.
현재까지는 북한의 성실 신고 가능성이 꼭 낮은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 6자회담에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북측의 플루토늄의 생산 내역, 사용내역, 재고량 등을 모두 밝히고 그에 대한 검증활동까지 수용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도 시드니 연설에서 “금년 말까지 북한이 보유중인 어떠한 프로그램도 완전 포기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그렇게 믿을 만한 ‘합당한 근거'(good reason)가 있다”고 말해 자신감을 내비쳤다.
결국 북한이 ‘플루토늄 50kg’과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성실한 신고와 비핵화 2단계 이후인 핵폐기 과정에서 ‘모든 핵물질과 프로그램을 확실하게 폐기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향후 북핵 로드맵을 완성하고 미북간 관계정상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가늠 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비핵화 2단계를 차질 없이 연내 이행하면 미국이 대북 테러지원국 삭제와 대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등으로 화답하고, 모멘텀이 유지될 경우 미북 관계정상화는 이르면 내년 7월이나 8월쯤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핵 협상만으로는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 의지를 확신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여전히 제조된 핵무기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북한이 예정대로 연내 불능화를 이행한 이후 보유한 핵무기를 대상으로 새로운 게임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