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폭로는 한국정치 동학 간파한 김정일 노림수

북한이 현 정부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최후의 카드를 내던졌다. 지난 1일 북한은 국방위원회 대변인 명의로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 내용을 공개하며 우리 측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북한이 외교적 결례라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비밀접촉 사실을 폭로한 것은 나름대로 비장한 결심이 섰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이번 ‘폭로전’ 배경과 관련해서 다양한 분석이 제시되고 있다. 무엇보다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것은 한국의 대북정책 기조를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변화시키기 위한 도발이라는 분석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이번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 내용의 폭로를 통해 한국사회에 남남갈등을 증폭시켜 대북정책의 줄기를 바꿔놓을 목적에서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은 한국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종북 세력의 지분을 전제로 그들의 역할 확대에 대한 북한 정권의 기대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사회의 대북정책 기조에 관한 여론의 향배는 지난 4·27 재보선 이후 미묘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원칙을 강조하던 현 정부의 입장이 침식되고 ‘햇볕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폭로전은 이 같은 한국정치의 동학(dynamics)을 간파한 의도된 도발이라는 것이다.   


4·27 재보선 결과는 진보진영의 약진을 예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선과 최문순 전 MBC 사장의 강원도지사 입성은 현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과 변화 열망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5월로 접어들면서 집권 한나라당 내부의 혼란상과 중첩되면서 야권연대 혹은 야권통합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친노 진영에선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상대적 위상추락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역할론 부상이 눈에 띄는 변화였다. 2008년 대북관에 이견을 보이면서 갈라섰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움직임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급기야 진보신당은 지난 1일 “북한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는 모호한 수준에서 민노당의 손을 들어주며 통합정당을 창당키로 합의했다.


이 같은 움직임들은 집권 후반기 권력누수(lame duck) 현상과 맞물리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하다. 정부 입장에서도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경색일변도로 남북관계를 마감했다는 비난의 멍에를 짊어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보선에서 사실상 패배한 한나라당과 현 정부는 국정운영에 있어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정국을 돌파해야 할 모티브(motive)가 절실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당 내부에서도 쇄신 요구가 점증하면서 대북정책의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었다.


집권 초기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촛불집회 등 좌파 세력의 위력을 경험한 바 있는 정부 여당으로선 집권 후반을 꾸려나갈 동력을 모색하는 데 주력했을 법하다. 최근 북한인권법의 국회통과가 좌절되면서 정부 여당의 곤혹감과 좌절감은 더했을 것이다. 특히 야권연합 혹은 야권통합이 가시화할 경우 대북정책에 있어서의 파괴력은 현 정부에 가장 큰 부담으로 인식됐을 것이다. 


북한은 현 정부가 체감하고 있을 현실적인 정치적 부담감을 간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현실 판단은 이럴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제재 및 대북 원칙들은 실효성 문제의 대두로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진보좌파의 정치세력화가 기대되고 자신들의 우군으로 역할해줄 것에 대한 자신감도 상승하고 있다. 미국도 조만간 식량지원을 재개할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경제협력 사업을 비롯한 중국과의 관계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짜여가고 있다.


이 모든 환경을 종합해볼 때 북한은 한국정부에 대해 쐐기전략을 구사한다면 현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대북 태도는 유화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차기 정부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선행(先行) 교훈으로 작용하여 자신들에 대한 저자세 굴종외교를 강제할 수 있는 학습효과가 될 것이라 판단한 듯하다.


더욱이 진보정당의 정권재탈환이 성사될 경우 이명박 정부 내내 그들의 숨통을 죄어왔던 제재는 봄날 눈 녹듯 사라지고 잃어버린 10년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고려에 따라 이례적으로 비밀접촉 내용까지 과장 왜곡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폭로로 우리정부의 곤혹감은 이루 다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치의 오점도 남겨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해명하고 국민들의 실망감과 오해의 소지를 말끔히 해소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북한과의 비밀접촉에 나섰다고 보도된 통일부, 국정원, 청와대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들의 의혹을 하루속히 해소해야 한다. 감추려고 할수록 거짓말은 늘어나고 나중엔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면 그 진의가 무엇이었는지, 그렇지 않다면 정확한 해명을 통해 북한의 비난을 반박함으로써 정면돌파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용기이고 국민들에게 정부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