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포탄이 연평도 아닌 서울에 떨어졌다면…

이른 아침 연안부두를 출발한 여객선은 2시간 30분 가량 세찬 물살을 가른 뒤 목적지인 연평도에 도착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1주년을 기해 찾은 이곳에는 해병대원들과 기자, 그리고 방문객들로 분주했다.


연평도 당섬선착장에서 내리자마자 눈길을 멈추게 한 것은 북한의 포격으로 인해 민둥산으로 변해버린 야트막한 뒷산이었다. 당시의 처참하고, 다급했던 상황을 짐작케 했다. 마을 군데군데에도 여전히 포격 당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지난해 북한의 포격으로 생긴 민둥산의 모습. 포격의 흔적은 연평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봉섭기자


마을을 둘러보다 연평초등학교 담벼락에 걸려 있는 ‘포격의 화약연기, 평화의 꽃향기로 돌려보내요’라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 보니 학교 담장에는 연평초등학교 학생들과 해병대원들이 물감과 색연필로 꾸민 돌멩이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 중 한 돌멩이에는 “남과 북이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평화가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이러한 문구들이 연평도가 빠르게 회복되는데 작은 힘과 희망이 되고 있는 듯 했다.









▲연평초등학교 담벼락에 놓여진 돌멩이들. 연평초등학교 학생들과 해병대원들이 함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김봉섭 기자


섬을 돌아보는 도중에는 주민들보다 군인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헬기와 군용차들이 상시적으로 마을을 순회하며 복구작업을 돕거나 민원을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길에서 만난 연평중학교의 한 여학생들은 “폭격 당시 일상적인 사격훈련이라고 생각했었다”며 “아직까지 사격훈련이 실시되면 (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특히 취재 중 방문했던 피폭 당시 주거지역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어느 것 하나 본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없었다.


그동안 6·25전쟁과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사건 등 북한의 공격에 의한 피해를 신문을 통해서만 접했었는데 이렇게 현장에 와보니 그 때의 참상이 생생히 느껴졌다. 형체를 알수 없는 물건들, 발밑에서 깨지는 유리파편 등을 직접 보게 된 경험은 충격적이었다.








▲포격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보존한 건물터. /김봉섭 기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는 주민, 천둥소리에도 놀라 숨어버린다는 강아지들에 대한 이야기 등은 점차 잊혀져 가던 연평도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했다.


연평도 포격으로 꽃게잡이 활동이 중단돼 주민들은 생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또 많은 주택 파손으로 기본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140여 명의 학생들은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이 기자가 지금 살고 있는 서울에서 일어났다면, 또 고향인 부산에서 발생했다면 나의 생활과 나의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하니 몸서리 쳐진다. 이번 연평도 포격 현장 취재는 북한이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느냐는 평소의 안일한 생각과 느슨한 안보의식을 다시금 조여맬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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