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평화협정회담 제의 배경과 우리의 대응 방향

올해 북한은 상호 모순의 정책목표를 담은 신년 공동사설을 내 보냈다.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제2차 지하 핵 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것은 강성대국 건설에서 장쾌한 승리의 첫 포성을 울린 역사적 사변”이었고, “올해의 총공세에서 새로운 비약을 이룩하기 위한 근본비결은 모든 분야에서 첨단을 돌파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이는데 있으며, 첨단돌파전의 기본전선인 국방공업부문에서 강성대국의 대문을 두드리는 승리의 포성이 계속 울려나오게 해야 한다”고 언급함으로써, 북한의 군사적 핵 능력 보유를 대내외적으로 공식화하고 나아가 핵 능력 증강노력을 지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사실 북한은 지난해 12월 23일 김정일의 북한군 최고사령관 추대 18돌 기념 중앙보고대회에서 북한군 차원에서 처음으로 이영호 북한군 총참모장이 “당당한 핵보유국”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바 있다.


한편, 북한은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를 마련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일관하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평화체제 구축 입장도 제시했다. 핵 능력 증강의도를 시사하는 한편 비핵화를 위한 평화체제 구축 목표를 제시하는 등 상호모순의 이중적 북핵 목표를 제시했던 셈이다. 

이러한 이중적 북핵 관련 정책 목표 하에 북한 외무성은 지난 11일 “위임에 따라 조선전쟁발발 60년이 되는 올해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을 정전협정당사국들에 정중히 제의한다”며 평화협정회담을 국제사회에 제기했다.


이어 북한 외무성은 지난 18일 “평화체제를 논의하기 앞서 비핵화를 진척시키는 방식은 실패”로 끝났으며, “제재 모자를 쓴 채로 6자회담에 나가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이 절대로 허락지 않는다”고 언급, 북한의 평화협정회담이 유엔대북 제재 해제 → 평화협정회담 진행 → 6자회담 복귀 → 평화협정 체결 → 북한의 근본적 비핵화 조치 등의 ‘선 평화협정체결문제 논의 후 비핵화 논의’ 구도로 전개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평화협정회담 제의의 실현 가능성, 그 제기 의도, 그리고 우리의 정책적 대응방향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


우선, 북한의 ‘선 평화협정회담 후 비핵화 논의’ 구도의 평화협정체결 제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첫째, 북한의 핵 협상행태에 대한 적잖은 불신감을 갖고 있는 정전협정의 실제적 핵심 당사국인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은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서 6자회담 복귀 후 북핵 프로그램의 해체를 위한 확증적인 조치가 취해진 이후에 평화협정 관련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한국도 북한 제의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있다.


둘째, 북한이 제기한 평화협정체결 구도의 비현실성이다. 원론적으로 평화협정은 제도를 통한 안보확보방식의 하나이다. 평화협정 체결주체의 신뢰할 만한 평화보장의지가 성공의 핵심 관건이다.


실패한 중동평화협상 사례들이 증명하듯이, 정치‧군사적 상호신뢰가 축적되지 않으면 평화협정의 유효성 보장은 어렵다. 한반도평화의 최대 위협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북핵 문제의 뇌관을 놔둔 채 절대적 체제 상반성을 전제로 할 한반도 평화협정의 위험 노출 가능성은 적잖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평화협정회담 제의의 숨은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하지 않다.

우선,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열어놓고 6자회담 복귀 대가를 톡톡히 챙기려는 목적이다. 


북한당국이 노리고 있는 것이 이점이다. 북한으로서는 양국의 내적 정치 부담을 활용하여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여러 전제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수 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해제, 대규모 식량 및 중유 제공 등을 6자회담 복귀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울 가능성이다.


둘째, 6자회담 복귀 시 북핵 폐기 프로세스 진척 압박에 대한 대응 차원의 협상 지렛대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6자회담 복귀 이후 어느 지점에서부터 북핵 협상이 재개될 것인지, 그리고 대북 정치‧경제‧안보적 인센티브는 북핵 폐기 프로세스의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제공될 것인지 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북한으로서는 평화협정문제의 우선적 이슈화를 통해서 북핵 폐기 프로세스를 가능한 한 지체시키면서 실리를 취하는 협상전술을 전개할 공간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6자회담 재개의 낮은 가능성 혹은 재개 후 교착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북한의 핵 능력 증강기회 포착을 위한 일종의 시간벌기 목적을 가정할 수 있다. 비핵화를 위한 평화협정체결 협상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요한다.


평화상태에 대한 합의 도출, 평화협정체결에 따른 군축의 목표설정과 그 실행방식, 평화관리의 방식과 평화관리기구의 창설문제, 평화협정의 국제적 보장방안, 그리고 비핵화의 구체적 일정과 내용 등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핵심 의제들의 성격상 평화체제구축 프로세스는 장기간을 요한다.


북한은 이러한 복잡하고 이해일치가 어려운 평화협정 논의 기간 동안 핵 문제와 관련한 고강도의 국제적 감시체제와 핵 폐기 프로세스의 진행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넷째, 한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하기 위한 남남갈등 유도 목표이다. 북한의 평화협정체결 제의는 사실 ‘10. 4 남북정상선언’의 섣부른 종전선언 문제를 다시금 수면위로 올라서게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남갈등 가능성이 촉발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한이 올해 ‘6. 15공동선언 10주년’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그 어느 때 보다도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전술책동이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전략을 모색해야할 한국으로서는 포스트 김정일 체제 구축과정에 있는 북한의 기본적인 대내외 안보전략의 핵심을 정확하게 읽고, 그에 대한 정책당국과 여론주도층의 이해의 공감대 유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포스트 김정일체제 구축 과정의 북한의 안보전략은 핵 보유의 자신감을 바탕에 두고 북한군의 확실한 대남 주적 관념을 유지시키면서 대미 평화공세를 통해서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한국 내 연북화해정책 지지 세력을 활용하여 한국정부의 남북관계 주도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지금 북한당국은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연다는 것이 빈말이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현실이 점차 그리 되어가고 있는 형국에서 북한은 더욱 더 핵 보유에 집착할 것이며, 그럴수록 북한의 평화협정 제의의 불순한 의도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만약 북한의 평화협정체결 제의가 진실성을 담고 있다면 우선 북한으로서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준수와 ‘남북기본합의서’ 체제의 전면적 이행의 길로 나오면 그만인 것이다. 한국의 대응방안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