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평화공세 집중.올인’ 배경은

공교롭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지 1년이 되는 8월 시작된 북한의 전방위적인 평화공세가 거침이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이 파견한 ‘특사 조의방문단’은 조문단의 역할 뿐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김양건 북한 통전부장)을 위한 김 위원장의 ‘특사’로서 임무도 수행하고 돌아갔다.

조문단은 이명박 대통령 면담을 위해 우리 정부가 일부러 일정을 하루 늦춘 것은 물론 다른 외국 조문사절단의 이 대통령 예방과 같은 형식으로 면담토록 한 것도 수용함으로써 북한이 가장 중시한다는 ‘체면’ 깎이는 일도 감수했다.

조문단의 이러한 행보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이 대통령에게 반드시 전달하는 특사로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훈령에 따른 것일 것이라는 점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면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면담 등과 더불어 김 위원장이 대외 평화공세에 치중하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지난 4,5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연이은 제2차 핵실험 때와 정반대 방향이지만 김 위원장 특유의 집중과 ‘올인’ 행태라는 점에선 일치한다.

김 위원장은 조문단 파견에 앞서 억류중이던 미국 여기자 2명을 활용해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불러들여 미국과 관계개선 의지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여기자 2명을 석방했다.

또 역시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 문제를 핑계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면담한 뒤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해 그동안 남북관계의 경색과 대립을 상징했던 문제들을 원상복구시키는 5개항의 교류협력 합의를 발표했다.

북한은 조문단 방북에 앞서 남북간 출입.체류 제한을 골자로 자신들이 지난해 일방적으로 취했던 ‘12.1조치’를 해제하는 등 합의의 이행의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북한은 다시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하던 북핵 6자회담의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도 받아들였다. 그는 17일부터 21일까지 5일간이나 머물며 6자회담의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협의를 가짐으로써 그 내용이 6자회담에 반드시 불리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북한이 결국은 대화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은 됐었지만, 일반적인 생각보다 이르게 시작돼 빠르게 진행되는 북한의 이러한 전방위 대화공세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압박의 완화를 노려 국면전환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그 끝은 북한체제의 미래를 감당할 후계체제 안착에 닿아있다.

이같은 시각에서 보면, 북한의 태도전환은 4,5월 대외 도발행위로 비친 일련의 행위때와 마찬가지로 내부적 수요와 필요에 따른 것이다.

작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 이후 북한은 연말연초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정운을 후계자로 내정한 뒤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경제발전을 다그치는 대중동원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또 4, 5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회의를 통해 당.군.정의 지배체제를 정비하고 장거리로켓 발사와 제2차 핵실험으로 대내외적으로 군사적 힘을 과시하는 등 대외 협상이나 교섭보다는 눈을 안으로 돌려 대내 정비에 주력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이같이 대외적인 위협을 통해 후계체제 명분을 만들어 밀고 나갔다면 이제는 실리로써 성과를 내야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는 결과를 내놓아야만 내부적으로도 후계구도가 안착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의 대남 평화공세에 대해선 궁극적으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환경 조성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과 본격적인 협상을 위해 남북관계의 병진이 필요하고 북한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남북관계에 대한 관리에 들어갔다는 지적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김 위원장과 클린턴 전 대통령간 면담에 배석한 사실 자체가 북미관계 진전에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현정은 회장 방북과 조문단의 파견 및 이 대통령 면담 등은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환경을 만들어 나가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 및 현정은 회장과 각각 3-4시간에 걸친 장시간의 면담을 통해 자신의 와병 이후 ‘북한체제 붕괴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미국 내에서 “굳이 그런 북한과 협상할 필요가 있느냐”는 협상 회의론이 확산되는 상황을 반전시키는 효과도 거뒀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쓸 수 있는 모든 위협카드를 소진한 상황에서 결국 대화로 선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2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외무성 성명 등을 통해 우라늄 농축 등 강경한 목소리를 내놓기는 했지만 가시적인 추가 카드를 내놓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재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평화공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바마 미 행정부가 금융제재를 핵심으로 대북 제재망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 등 전통적 우방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의 제재결의에 동참하고 있는 게 약효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북한은 대외관계를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관리하려는 자세를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며 “북미관계가 급진전 될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일정한 진전 가능성은 충분하고 그런 상황과 보조를 맞춘다는 측면에서도 남북관계를 일정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