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통영의 딸’ 신숙자씨 생존 여부 알려와

‘통영의 딸’ 구출 운동으로 국내외 널리 알려진 북한 억류자 신숙자 씨와 두 딸의 생사확인을 묻는 유엔 실무그룹의 질의에 대한 북한 당국의 답변에 신 씨의 생존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내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은 신 씨 모녀의 귀환을 촉구하는 국제인권단체들의 요청을 받아 지난 3월 북한 측에 이들의 신원확인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에 전달했다. 북한은 지난달 말 경 이에 대한 공식 답변서를 보내왔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신 씨 모녀 구출 활동을 전개해온 ‘북한 반인도범죄 철폐 국제연대(ICNK)’는 이 답변서 내용을 바탕으로 이날 오후 3시 프레스센터 외신기자 클럽서 기자회견을 연다. ICNK는 지난 해 11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신 씨 모녀의 생사 확인과 송환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ICNK는 7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이 ‘통영의 딸’로 알려진 신숙자 씨 모녀가 임의적으로 구금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지난 달 27일 유엔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유엔 실무그룹이 질의서에 세 사람의 신원 확인을 요청한 만큼 신숙자 씨 생존 문제도 답변서에 포함된다. 


신 씨는 독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혈액 관리 사고로 간염에 걸렸고, 교통사고까지 당해 1986년 입북 당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런 조건에서 정치범수용소에 장기간 감금돼 영양 결핍 등으로 건강이 크게 악화 됐을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구출운동


통영 출생으로 1960년대 후반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된 신숙자 씨는 현지에서 유학생이었던 오길남 씨를 만나 결혼했다. 신 씨와 오 씨는 교수직과 신병치료를 보장한다는 북한의 공작에 속아 1985년 두 딸과 동반 입북했다. 그러나 부부는 곧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끼게 됐고 1년 뒤인 1986년 오길남 씨만 북한을 탈출했다. 신 씨 모녀는 이후 북한 요덕수용소에 수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 모녀의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고향인 통영을 중심으로 구출 운동이 시작됐고, 지난해부터는 국제인권단체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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