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탄광 끌려간 국군포로 국가유공자 불인정

6.25 전쟁 당시 국군포로로 북한에 끌려가 30년 가까이 아오지 탄광에서 근무했던 탈북자가 자신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탈북 후 `국군포로 귀환자’로 인정된 Y씨가 “북한에서 탄광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부상했으므로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유공자가 되려면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직무수행 중 다쳐야 하나 원고가 입은 부상은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돼 북한 공민으로 편입된 상태에서 탄광 근무를 하다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북한에 있을 때 대한민국에서는 국군 신분을 부여해 왔고 북한군에 강제로 체포됐던 사정 등을 감안하더라도 원고가 억류기간 중 억류국 등의 공공조직에 가입해 대한민국에 간접적인 적대행위를 했다는 국방부의 판단 등에 비춰볼 때 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Y씨는 6.25 전쟁 당시인 1952년 입대해 복무하다 북한군에 체포됐으며 1958년부터 1985년까지 오봉탄광(아오지 탄광)에서 노동자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4년 10월 북한을 탈출한 뒤 입국해 국군포로 귀환자 후속조치에 따라 2005년 8월 만기전역 처리됐고 국군포로 등의 대우및등록에관한 법률에 따라 억류기간 중 북한측 공공조직에 가입해 협조했을 경우 부여되는 귀환포로 3등급으로 등록돼 소정의 퇴직수당과 연금 등을 받아 왔다.

그는 손가락 및 발가락 일부가 절단돼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상태이며 탈북 직후 정부 조사에서 “참전 당시 소총 노리쇠 충격으로 오른손 중지가 잘렸고 탄광근무 중 안전사고로 왼쪽 손가락과 오른쪽 발가락이 절단됐다”고 진술했다.

국군포로들은 1953년 북한의 내각명령에 따라 전원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돼 북한 공민으로 편입된 후 일반 주민과 마찬가지로 식량배급과 월급 등을 받으며 생활했으나 월남자 가족이나 유엔군 협조자 등과 함께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탄광 등지에서 일하며 사회적 차별과 불이익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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