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클린턴 방북으로 일석삼조

미국 여기자 2명이 지난 3월 북중 국경지대를 취재하다 북한 경비병에게 체포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북한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일 미국인 `인질’을 잡고있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억류중인 미 여기자 2명을 120% 활용,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성사시킴으로써 꼬일대로 꼬인 북미관계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마련하고,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건재와 체제 장악 및 안정을 과시하며, 주민들에게 “조미(북미) 대결전”에서 북한의 ‘승리’를 선전할 수 있게 되는 일석다조의 이득을 챙겼다.

북한은 우선 방북한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면담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은 제2차 핵실험과 그에 따른 미국 주도의 유엔 안보리 제재로 출구가 안보이던 북미 대결구도를 대화모드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손에 넣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자신들의 원칙과 한국 정부 등에 대한 배려 등의 차원에서 이번 이벤트를 여기자 석방을 위한 클린턴 전 대통령 개인 차원의 것이라는 공식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나, 북한은 언론매체들을 통해 북미간 현안들이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허심탄회하고 깊이있게 논의”됐다거나 “폭넓은 의견교환”이 진행됐다며 “대화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데 대한 견해일치가 이룩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결과를 설명하는 북한 당국의 ‘보도’는 북미관계 “개선 방도”에 관한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메시지”가 전달됐다고 주장하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북미 사이의 “이해를 깊이 하고 신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자체 결산하기도 했다.

북미간 이해와 신뢰에 대한 북한 당국의 언급은 지난 2007년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당시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가 해결되면서 호전되고 있던 북미관계를 가리켜 “최근 한반도 정세가 일부 완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김 위원장은 20대 중반에 불과한 자신의 삼남 정운의 후계체제 구축을 서두르느라 성급하게 강행한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2차 핵실험으로 인해 미국 주도에 중국과 러시아까지 가세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압박에 직면함으로써 2012년까지 경제를 어느 정도 재건하는 것 등을 통해 후계체제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려던 구상에 차질을 빚게 됐다.

그렇다고 항복선언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인 여기자 문제를 미끼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실현시켜 정상회담에 준하는 김정일-클린턴 면담 형식을 통해 자신도 대외정책을 자연스럽게 수정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전환토록 유도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미 여기자들은 최악의 고립상태에 있던 북한에 절호의 탈출구를 마련해준 행운의 열쇠가 된 셈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곧바로 북미관계가 본격 협상의 단계로 접어들지는 않겠지만, 대화의 기반이 마련된 만큼 김 위원장으로선 발등에 떨어진 불인 후계체제 구축과 2012년 이른바 `강성대국’ 실현을 위한 대외여건 개선의 틈을 찾게 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또 클린턴 전 대통령과 면담 및 만찬을 통해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는 동시에 북한 급변사태론 등 다시 국제사회에 유행하기 시작한 북한 붕괴론의 확산을 차단하는 효과도 얻었다.

최근 한국과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선 김 위원장이 건강문제로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등의 관측이 난무하고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고위관계자들마저 김정일 체제의 불안정론을 자주, 공공연히 거론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김정일-클린턴 면담을 계기로 김 위원장의 `유고’나 체제붕괴 임박론은 상당히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북한 내부적으로 김 위원장의 영도력과 미국에 대한 북한의 승리를 선전할 수 있는 호재이기도 하다.

북한은 외교에서 북한 고위관계자의 외국 방문보다는 외국 고위인사의 방북을 훨씬 중시하면서 체제 선전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북한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방북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지도자들의 방북에 대해 늘 “김정일 장군님이 위대하고 선군정치로 강력한 군사력을 갖게 됨으로써 강대국들이 저마다 머리를 숙이고 찾아온다”는 식으로 주민들에게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조미 대결전” 상황임을 주민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김 위원장이 선군정치로 이 대결전을 승리로 이끈 결과라고 선전하기에 최적의 재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미국 여기자들이 “불법입국해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한 데 대해 심심한 사과의 뜻을 표하고 그들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관대하게 용서해 돌려보내줄 데 대한 미국 정부의 간절한 요청을 정중히 전달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주장한 대목은 앞으로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선전할 내용을 말해준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수익 셈법, 특히 북미관계 개선이 앞으로 언제 어느 정도 실현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당장 관건인 북미간 대화의 틀을 두고 북한과 미국간 입장 차이를 해소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미국은 북미 양자대화를 하더라도 6자회담의 틀안에서 해야 한다는 원칙인 반면 북한은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거와 같이 중국을 매개로 회담틀의 절충점을 찾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달 27일 6자회담 불참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화 방식은 따로 있다”고 말해 북미간 양자대화를 간접 촉구했지만 양자로 못박지는 않았다.

2005년 6자회담의 교착국면 타개를 위해 부시 행정부가 선택했던 중국 중재 형식의 북.미.중 3자협의 방식이 북미 대화를 시작하는 틀로 일각에서 거론된다.

미국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존재를 들어 6자회담 틀 안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북한은 북한 대로 실질적인 북미 양자대화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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