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선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그 배경과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5년 전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시 전체 당선자 명단을 발표하기에 앞서 김 위원장의 대의원 당선 소식이 먼저 보도됐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남북·북미·북중 정상회담에 이어 올해 베트남을 공식 친선 방문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는 만큼, 대외적으로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히면서 내부적으로는 유일지도체계를 한층 공고히 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북한 조선중앙TV는 12일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선자 687명의 명단을 발표했으나, 공개된 명단에 김 위원장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2014년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시 김 위원장이 입후보했던 ‘111호 백두산선거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111호 직동선거구로 명칭이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선거에 나오지 않았다는 게 확실하다면 이는 김정은식 보통국가화, 정상국가화 추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면서 “지금의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국회의원까지 겸하고 있는 이상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보통의 국가 형태로 가면서 국제사회에 ‘나도 정상국가의 지도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북한은 현재까지 김 위원장의 출마 및 당선 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김 위원장이 대의원 선거에 아예 출마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 위원장의 불출마가 북한 매체 등을 통해 공식 확인된다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대의원에 선출되지 않은 최초의 사례가 된다.
특히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열린 지난 2014년 당시와 현재 북한 매체의 보도 행태가 판이한 점은 김 위원장의 불출마에 한층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실제로 5년 전 선거 당시 북한 매체들은 선거 하루 만에 김 위원장의 당선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뒤 이튿날 전체 당선자 687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선거를 앞둔 분위기도 이번과 사뭇 달랐다. 당시 김 위원장은 선거 20일 전 제111호 백두산선거구에 후보로 등록한다는 서한을 공개한 뒤 바로 다음날 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 같은 사실은 물론 북한 매체를 통해 일제히 보도됐다. 이 외에도 북한은 선거를 한 달 앞두고부터 김 위원장을 대의원 후보로 추대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내달 초 열릴 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새 직위와 관련한 법령 개정이 있었거나 혹은 곧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70년대 김일성의 주석제 도입과 9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 이후에도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직을 가져갔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굉장히 이례적인 것”이라며 “대의원 선거법이나 관련 법령을 바꾸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곧 열릴 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의 지위에 대한 변화를 주고, 수령 지위에 맞는 국가수반으로서 새로운 기구체계를 꾸려나가려는 게 아닌가 싶다”고 전망했다.
한편,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은 평양시 만경대구역 ‘제5호 갈림길선거구’에 당선됐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정식으로 대의원에 진입한 셈이다.
아울러 리수용 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과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 김성남 당 국제부 제1부부장 등 김정은 정권의 핵심 외교 인사들도 최초로 대의원에 진입한 것이 확인됐다.
반면 ‘김정은의 집사’로 불리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과 김 위원장의 수행 비서격인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비롯해 김철규 호위사령부 부사령관,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등 2차 북미정상회담에 관여하거나 일부 인물들은 선출되지 않았다.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마무리됨에 따라 북한은 내달 초 제14기 1차 회의를 열고 내각 인선을 진행하는 등 ‘김정은 2기 체제’의 정식 출범을 알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이번 선거에 전체 선거자 99.99%가 참여했으며, 해당 선거구에 등록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자들에게 100% 찬성투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