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최고신랑감은 ‘3外’…돈 많아야 인기

▲ 웨딩포토 촬영을 신의주 강변에 나온 신혼부부 모습. 신부의 면사포는 한국드라마가 유행시킨 장신구다.ⓒ데일리NK

결혼식은, 말하자면 생판 모르던 남녀가 만나 부부로 결합되었음을 알리는 사회적 의식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아무리 못사는 집이라도 부모들이 자식들의 결혼식에 크게 신경 쓴다.

조선에서는 일반적으로 남녀간의 자유연애가 장려되지 않는다. 중학교 시절은 물론이고 대학에서조차 남녀 학생간 연애가 통제된다. 젊은 남녀가 오붓하게 산보할 장소조차 없다. 처녀 총각이 팔짱을 끼고 거리에 다니면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연애결혼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조선에서는 기본적으로 중매결혼이 많다. 그래서 여러 번 맞선을 보는 것은 괜찮으나 여성들의 경우 연애 상대를 여러 번 바꾸는 것은 흉이 된다. 그러니까 결혼을 장담할 상대를 만나야 연애를 하는 여성들이 많다.

1등 신랑감의 키워드는 ‘외국’

결혼상대를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각각이지만 그래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다. 90년대 식량난 시기 이전에는 ‘입당, 군사복무, 대학졸업’을 마친 남성이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군대에 가서 입당한 후 대학에 다니는 남자가 있으면 딸 가진 집은 대학 내내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지금도 이런 풍조는 남아있지만 2000년대에 이르러 사람들의 의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요즘 신랑감은 보통 3등급으로 나눈다. 1등급은 ‘3외’에 포함되는 남자들이다. ‘3외’란 외국에 드나드는 남자, 외화벌이 회사에 다니는 남자, 외국에 나갈 가능성이 높은 남자로 꼽는다. 2등급은 부모가 높은 간부이거나 돈 많은 집 남자이다. 3등급은 부모가 권력은 없지만 사람이 똑똑해서 군사복무 마치고 입당해서 자기 힘으로 대학에 다니는 남자들이다.

이러한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남자들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부류에서 배우자 여성을 고른다. 허나 이런 식으로 부류가 나뉜다고 해도, 결국 돈 잘 버는 남자가 인기가 많다.

중앙당 5과 대상은 특급 여성

평양에서 남자들이 여자를 고르는 기준으로 볼 때 1등급은 부모가 권력이 있고 돈이 많은 집이다. 요즘에 와서 가시집(처갓집) 덕을 보려는 남자들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높은 간부이거나 돈이 많은 집 딸들의 인기가 높아졌다. 실제로 가시집 덕에 지방 남자가 평양시민으로 올라와서 출세하는 경우가 많다.

2등급은 부모가 힘이 없는 경우 본인이 똑똑해서 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대학졸업 여성들이다. 물론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외국어대학, 평양의학대학 정도를 졸업하면 금상첨화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원을 하는 여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훌륭한 신부감이다.

3등급은 부모가 권력도 없고, 집에 돈도 없고,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생활력이 강해 장사를 잘하는 여성들이다. 요즘 조선에서는 장사를 못하는 여성들은 남자들에게 머저리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권력, 학벌, 돈을 초월해 모든 남성들에게 특급여성으로 손꼽히는 부류가 있다. 외모가 출중해 중앙당 5과에 뽑힌 여성들, 영화배우나 무용배우 및 가수들이다. 5과 여성들은 높은 간부들의 기쁨조나 전화 교환수로 근무하다가 25살이 되면 입당시켜서 호위총국 군관들이나 당 부원들과 결혼시키고 집과 살림살이를 마련해준다.

영화배우, 무용배우, 가수들은 보통 간부 집 며느리로 시집가서 큰 호사를 누리며 산다. 특히 영화배우들은 영화촬영 때 입었던 옷과 장식품들을 모두 자체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신랑감을 구할 때 돈이 많은 남자를 우선적으로 고른다. 그래서 20살 처녀가 70살 당 간부와 살림을 차리거나, 27살의 여배우가 3번이나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는 희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집에서 술 따르고 맞절하는 조촐한 결혼식

결혼 상대를 고른 다음 부모들끼리 혼담이 오고가면 약혼식 날짜를 잡는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약혼식 날이면 남자 집에서 떡과 음식을 준비해서 여자 집으로 온다. 약혼식 날에는 부모들이 결혼식 날짜를 정한다. 결혼식 날짜는 ‘손(損) 없는 날’로 정한다.

결혼예복은 크게 돈이 들지 않는다. 남자는 양복을 입고, 여자는 조선 치마저고리를 준비하면 된다. 치마저고리 감은 겨울에는 ‘비로도’, 봄 여름 가을에는 ‘향라’라고 불리는 천이 쓰이는데 그리 비싸지 않다.

평양의 귀국 재일동포들은 보기 드물게 서양식 예복을 입고 결혼식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한때 민족전통을 떠들면서 조선시대 사모관대와 예복차림이 유행되기도 하였으나 최근에 와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저 치마저고리 차림에 가슴과 머리에 꽃을 달고 흰 장갑을 끼면 그만이다.

사실 지방 사람들은 향라 치마저고리를 만들어 입는 신부도 많지 않다. 새옷을 장만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 소도시는 그럭저럭 향라 치마저고리를 입지만, 농촌에는 돈을 주고 치마저고리를 빌려 입거나 천리마 운동시절의 구식 옷을 입기도 한다.

결혼식은 신부 집에서 먼저 치른다. 결혼식이라고 해야 잔칫상 앞에서 신랑신부가 서로 술잔을 나누고 맞절을 한 다음, 양가 부모들께 술을 붓고 절을 하면 끝난다. 그리고 다음날 신랑 집으로 떠난다. 신랑 집에서도 똑 같은 예식을 치룬다. 그리고 3일이 지나고 나서 음식을 장만해서 천정집 나들이에 나선다.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큰 규모의 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 우선 결혼식에 동원되는 자동차부터 다르다. 조선에서는 자동차를 구하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고급 승용차를 고른다. 높은 간부들의 집에서는 여러 대의 자가용이 동원되기도 한다.

결혼사진은 만수대예술극장이 으뜸

▲ 결혼식에 동원된 사람과 자동차는 부(富)의 수준을 상징한다.ⓒ데일리NK

결혼식은 신랑신부가 서로 술잔을 나누고 절을 나눈 다음, 신부 측 부모님께 예를 올린다. 그 다음 동원된 승용차를 타고 김일성 동상에 나가 꽃다발을 헌화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다시 승용차를 타고 평양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 촬영과 동영상 촬영을 한다.

당창건기념탑, 5.1경기장, 주체사상탑 등이 주요한 촬영 장소들이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정치적 목적도 있지만 평양에서 제일로 시설이 잘 꾸려져 있기 때문에 사진이 멋지게 나온다.

평양시 만수대예술극장은 신혼부부가 가장 많이 찾는 사진촬영 장소다. 어떤 날에는 수 십 쌍이나 되는 신혼부부들이 몰리기도 한다. 만수대예술극장 앞 분수대에서 신랑신부가 나란히 걷는 것, 신부가 신랑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것, 신랑이 신부를 안고 빙빙 도는 것 등은 너나 할 것 없이 촬영하는 자세다. 이런 유행은 2002년 전에는 없었는데 최근에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사진 촬영이 끝나면 초대연(피로연)이 벌어진다. 가까운 친척들과 이웃들, 신랑 신부의 동료들이 초대된다. 결혼식은 보통 집에서 하기 때문에 집이 아무리 큰 부자들이라 해도 수 십 명을 초대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식은 가족들 위주로 행사를 진행하고, 이웃과 친구들까지 포함시키는 초대연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초대연은 상에 차려놓은 음식을 들면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춘다. 최근에는 DVD 플레이어로 가라오케를 즐기는 경우도 많다. 이때 신랑 신부도 손님들의 요청에 따라 노래 한 곡씩 선보여야 한다.

최근에 평양시에는 결혼식 전문 식당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용 요금이 턱없이 비싸고 음식들의 수준이 너무 낮아 장사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술 취한 닭이 깨어나 잔칫상 이리저리

내가 직접 구경한 결혼식은 몇 차례 되지 않지만 조선 결혼식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결혼식 잔칫상에는 한가운데에 신랑 신부를 상징하는 삶은 닭 두 마리를 반듯하게 세워서 올린다. 닭의 부리(입)에다 고추룰 물리는데,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옛 풍습이 남은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 집에서 닭을 구할 돈이 없었다. 아니, 닭을 살 돈은 있었지만, 장식용으로 한번 상에 올렸다가 손님들 입으로 들어가는 닭에 귀한 돈을 지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에 닭은 올려야 하기 때문에 이웃에서 살아있는 닭을 빌려다 쓰기로 하고, 그 돈으로 다른 음식을 더 많이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닭이 상 위에서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에, 미리 닭에 술을 먹여 잠들게 한 후 잔칫상에 올리기로 했다. 그런데 결혼식이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취한 닭이 술에서 깨어나 잔칫상에서 난동을 부렸다. 결국 결혼식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신부는 결혼생활에 불길한 징조라고 울고불고, 하객들은 얄팍한 부모들의 계산에 저마다 한 소리씩 핀잔을 퍼부었다.

어처구니 없는 일도 생겨

▲ 결혼사진 뿐만 아니라 동영상 촬영도 유행으로 자리잡았다.ⓒ데일리NK

2005년 6월 경이었다. 조선중앙 제3방송(각 구역마다 대형 확성기로 나오는 유선방송)으로 결혼식 촬영 중에 벌어지는 해괴한 일들에 대한 통보방송이 나왔다. ‘통보방송’이란 국가 방침을 어기는 일반 주민들의 행태를 고발하고 이를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6월 어느 날, ‘손이 없는 날’이라며 수많은 신혼부부가 결혼식을 올렸고 만수대예술극장은 결혼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풀밭에서 다정히 앉아있는 쌍, 분수대에서 마주보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쌍, 신랑신부가 팔짱을 끼고 행진하는 쌍……

그 중에 유난히 사람들이 눈길을 끄는 쌍이 있었는데, 유난히 체격이 왜소한 신랑이 자기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신부를 두 팔로 안고 빙빙 도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랑이 신부를 제대로 잡지 못해 신부가 ‘악’ 소리와 함께 계단으로 굴러 크게 다치고 말았다.

다른 한쪽에서는 계단을 내려오는 신부의 손을 신랑이 잡아주는 장면을 촬영하던 중 높은 굽 구두를 신고 있던 신부가 발을 잘못 디뎌서 신랑을 덮치는 바람에 신랑 신부 모두 얼굴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3방송의 통보에 의하면 이날 만수대예술극장에서만 5쌍의 신혼부부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3방송에서는 이것을 두고 “우리 것을 지키지 못하고 황색 유행을 뒤 따르려다 불행을 초래한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새로운 생활방식대로 살고 싶은 신세대들의 욕망과 아직까지 그것을 비웃음으로만 받아들이는 낡은 의식 사이의 차이이다.

며느리 가방까지 풀어헤친 시어머니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 집으로 갈 때 신부는 세간 살림을 준비해 가야 한다. 한번은 어느 간부 집 딸이 시집을 갔는데 결혼식을 마치고 3일 후에야 친정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버스정류소에 도착해서야 친정에 가져갈 짐 가방을 빠뜨리고 왔음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시집으로 다시 돌아가 보니 시부모와 친척들이 부자 며느리의 짐 가방을 몰래 헤쳐서 하나하나 꺼내 구경하고 있는 것이었다.

짐을 풀어놓은 시어머니도 헐떡이며 들어선 새 며느리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 눈길을 피해야 했다. 지지리도 못 살던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소지품이 든 가방도 혼수살림인 줄 알았던 것이다.

결혼서약문 “장군님께 충성하고~”

내가 중학생 때 우리 옆집으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다. 자정도 넘은 깊은 밤에 옆집 신혼부부의 집에서는 낭낭한 글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로가 목소리를 합쳐가며 무슨 연습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신혼부부가 밤일을 치루며 내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여, 나는 응큼한 상상을 하며 옆집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소리는 결혼서약문 낭독 연습이었다. 조선에서는 결혼식을 올리면 정해진 시간 안에 해당 보안서(경찰서) 주민등록과에 찾아가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이때 신랑 신부는 결혼서약문을 함께 낭독해야 한다.

결혼서약문은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사회의 한 세포로서 가정을 잘 꾸려나가며, 서로 믿고 의지하여 혁명의 한 길을 함께 가겠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날 밤 나는 엉뚱한 호기심의 발동으로 별것도 아닌 일에 귀를 쫑긋 세웠던 나 자신의 한심함을 자책하며 밤잠을 설쳤다.

19살부터 시집가는 농촌 처녀들

알려진 바와 같이 일반 백성들은 물론이지만 특히 농촌의 농민들의 생활 상태는 말로 표현할 바가 못된다. 이들은 수확물 분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먹을 것도 부족한 형편이니 농장에 일하러 나가기를 죽는 것만큼 싫어한다.

특히 처녀들이 더 하다. 한창 젊음을 꽃 피워야 할 나이에 햇볕에 온몸을 새까맣게 태워가며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하자니 얼마나 애달픈가? 그런데 이들은 약혼식만 하게 되면 농장에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 약혼식을 올리면 1일 배급 300g 짜리 부양가족으로 편성되어 농장 출근의 의무가 없어지고, 본격적인 장사의 길에 나갈 수 있다.

그래서 농촌의 젊은 처녀들은 신랑의 외모나 배경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남자만 생기면 약혼부터 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문에 농촌지방에는 19살, 20살 짜리 기혼여성들이 흔하다. 서로의 사랑과 믿음의 기초 위에 세워야할 결혼이 이들에게는 고된 노동에서의 해방되기 위한 피신처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박철용/평양 K대 출신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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