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초강경 카드’ 왜?…“美 대북정책 저울질 중”

북한이 12일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제한, 북핵 시료채취 거부, 판문점 경유 남북 직통전화 단절 선언까지 남북 · 미북관계를 겨냥한 초강경 압박 카드를 꺼내들었다.

군부와 외무성, 적십자까지 동원한 ‘3각 공세’다. 살라미 전술에 따라 점차 단계를 높여가는 ‘벼랑끝 전술’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고강도 카드를 거내든 것은 남북, 미북관계, 북핵문제를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로 만들기 위한 전술이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북한이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지 살포와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 불이행에 대한 불만을 표명하면서 ‘남북관계 전면차단’을 경고한데 이어 나온 이른바 ‘실질적 조치’에 돌입한 것이다. 이는 남한 정부를 압박하여 결국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대북정책으로의 전환을 이명박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시료채취 거부’라는 카드로 ‘판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는 북한의 의도는 ‘테러지원국 해제’와 중유 지원 등의 경제적 실익을 챙긴 북한이 더 이상 임기 말 부시 행정부에는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 ‘시간끌기’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차기 오바마 행정부의 관심을 끌면서 향후 핵협상을 미·북 양자구도로 가져가려 한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특히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시료채취’가 전제돼야 하는데, 북한이 거부하면서 결국 재개될 6자회담에서도 ‘검증 의정서’를 도출하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따라서 당분간 6자회담의 동력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통미봉남 가속화” 남북경색 지속=북한은 대남압박을 당분간 지속하면서 남북관계의 경색을 유지, ‘김정일 와병’ 등에 따른 내부 단속에 힘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 전문가들은 ‘미북대화’를 강조하는 오바마 정권의 탄생에 따라 북한은 당분간 ‘통미봉남’ 전략을 가속화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남북관계 경색은 계속될 것”이라며 “김정일의 와병 등으로 북한 내부 상황이 유동적이지만 남한이 어떤 식으로든지 굽히기 전까지는 계속 강경한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 교수는 “북한이 미국과 남한을 동시에 겨냥한 포석을 한 셈”이라며 “남북관계는 경색을 유지하면서 남한정부의 정책변화를 압박하는 것과 동시에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기선을 잡아 미북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남한을 미북관계의 종속변수로 고착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면서 “통미봉남 전략을 통해 남북관계를 대미관계의 상황을 유리하게 조성하는데 활용변수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은 오바마 정권의 탄생에 따라 ‘통미봉남’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남북관계는 현 상황에서 나아질 것이 없다. 북한도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남한이 이에 일희일비 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국방현안연구위원장은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가 좋기 때문에 남한에 대해 굽히거나 절실히 요구할 측면이 없다”며 “당분간 남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北, 부시 버리고 오바마 대북정책 가늠”=북한이 ‘시료채취 거부’ 입장을 밝힌 것은 임기 말 부시 정부의 행정력이 약화에 따른 협상 불필요와 더불어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가늠하기 위한 전략인 것으로 해석된다.

유 교수는 “차기 오바마 정부와 북한이 본격적인 대화에 착수해 미국이 북한문제를 주요 이슈로 다루게 하기 위해 유도하고 있다”면서 “북한문제가 오바마 정부의 경제, 중동 등의 국제문제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려나 있기 때문에 주목을 끌어 초반에 자신들의 목표에 맞도록 유리한 상황을 최대한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북한은 북핵문제와 관련한 미북간 협상에서 최대한 경제지원을 확보하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과시하며 오바마 정권을 압박할 것”이라며 “미국이 구체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해 체제보장과 내부 결속력, 통치력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바마 진영도 북핵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강조하고 북한체제에 대해 비호의적이기 때문에 미북관계는 당분간 급진전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북한도 이런 것들을 염두해 강수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도 “미국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길들이기’에 돌입했던 북한은 강수를 두더라도 오바마 정부가 대화에 나설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며 “한마디로 미국과의 협상거리를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단물을 빨아먹은 북한이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는 부시 행정부를 저버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면서 동시에 “이번 조치는 새로 출범하는 오바마 행정부를 미북 직접대화로 끌어들이는 미끼”라고 말했다.

전 연구위원은 이어 “의도적으로 상황을 악화시켜서 상대방의 이목을 끌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 판을 벌이는 전형적인 북한식 협상전략의 일환”이라면서 “오바마 정부가 시료채취 문제를 이유로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시료채취 거부는 오바마 정부를 테스트 하면서 동시에 내부 단결을 위한 것”이라며 “오바마 정부도 북한과 대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고, 정권 교체 기간에는 당분간 북한에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北核 ‘검증 의정서’ 도출 힘들어 6자회담 동력 상실할 듯=북한이 시료채취를 거부함에 따라 당분간 북핵문제는 위기감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검증 의정서’를 도출해야 할 6자회담은 ‘시료채취’를 두고 논란이 예상돼 진전이 어려워 보인다. 미북협상에 따라 6자회담이 끌려다닐 것으로 예상된다.

유 교수는 “시료채취는 북핵 검증의 핵심 사안”이라며 “결국 북한의 시료채취 거부에 따라 ‘검증 의정서’도 만들 수 없어 6자회담도 당분간 진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고, 김 위원장도 “6자회담은 당분간 진전이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윤 교수는 “일부로 위기상황을 조성해 자신들의 의지대로 북핵협상을 끌고 가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6자회담도 미북협상 결과에 따라 끌려 다닐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전 연구위원은 “6자회담의 장래는 불투명해졌다”며 “애초에 6자회담보다 미북 대화를 선호했던 북한인 만큼, 이번 담화는 북핵협상 구도를 6자회담에서 미북 회담으로 전환하려는 계략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북한이 6자회담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북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6자회담 합의사항 가운데 유리한 부분은 활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