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체제 전환 선행돼야 통일 가능”

▲ 10일 <자유지성300인회>에서 유지호 전 북예멘 대사와 만났다. ⓒ데일리NK

지금 한반도는 대전환의 국면에 진입해 있다. 북한의 만성적인 경제난은 이미 자체 회복이 불가능하다. 핵문제, 위조지폐를 비롯한 각종 불법행위와 국제사회에 주요 이슈가 된 북한인권문제 등 김정일 정권을 둘러싼 외부 환경도 희망적인 것이 없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는 ‘김정일 이후 한반도’를 비롯한 통일문제에 대한 거대 담론들이 점차 전개되고 있다. 『남과 북 뭉치면 죽는다』를 비롯하여 통일문제를 다룬 책도 많이 읽힌다. 그만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차츰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분단된 국가로 한국을 비롯하여 독일, 베트남, 그리고 예멘을 든다. 그동안 독일, 베트남의 분단과 통일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왔지만 남북 예멘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예멘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예멘은 협상을 통한 통일 → 이어진 무력충돌과 재분열 → 재통합 등의 과정을 겪었다. 그 사이 내전으로 비참한 상황을 겪었다.

예멘은 16세기 이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북예멘은 1918년 1차세계대전에서 오스만제국이 패전국이 되자 독립해, 1962년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으며, 남예멘은 1839년 영국에 의해 무역항 아덴이 점령된 후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북예멘과 분단되었다. 분단된 후 남예멘은 1967년 소련의 지원 하에 영국으로 부터 독립하여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1972년 카이로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통합에 합의, 18년간의 대화와 협상을 거친 후, 1990년 남북예멘의 통합을 선언, ‘예멘공화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1993년 남쪽의 발전을 도외시 한다는 남예멘의 반발로 대립상태에 들어갔고, 1994년 전면 내전으로 확대되었으며, 북예멘의 승리로 재통일되었다.

예멘의 경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남북간 군축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었으며, 지난 50여년 간 지속돼온 한미 군사동맹은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우리는 예멘의 경우에서 어떤 교훈을 찾을 수 있을까.

1990년부터 3년간 주(駐) 북예멘 대사를 지내며 예멘의 통일과정을 지켜본 유지호(柳志鎬, 73세) 전 대사를 10일 만났다.

유 전 대사는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체제전환이 선행되지 않는 한 통일을 가져올 수 없다”는 한마디 말로 남북예멘 통일의 교훈을 요약했다.

그는 “북한의 경제 상황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체제전환이 우선”이라며 “북한의 체제전환을 위한 여론 형성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송언론 부문에 종사하다 1970년대부터 외무부로 옮겨 인도, 일본, 서베를린 등에서 해외공보관, 총영사, 공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예멘의 남북통일』(1997년 서문당) 등 다수가 있으며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현재 <자유지성 300인회>에서 활동중.

“예멘 통일 과정, 남북한에 시사점 커”

▲ 예멘은 아라비아 남쪽에 위치해 있다. <지도 : 국가정보원>

– 예멘의 통일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한반도 통일의 모델로 독일과 예멘을 들 수 있는데, 독일이 유럽의 경제통합 과정에서 통일을 이룩했다면, 예멘은 걸프전 등 아랍권의 분열을 틈타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특히 예멘은 처음엔 협상으로 평화통일을 이룩했지만, 다시 내전에 휩싸이면서 결국 무력으로 재통일 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통일문제에 많을 것을 시사합니다.

남북예멘의 통일이 실패한 요인은 종교세력과 부족(部族)세력의 요구를 통일정부에서 묵살한 것, 남북의 군대 통합을 이루지 못한 점, 주변 국가와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지 못했던 점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북예멘이 합의 통일에 성공한 이후에도 무력충돌을 겪었던 이유는 남북예멘의 정치인들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 뿌리깊은 불신감을 지니고 있었고, 이 갈등을 대화로 풀어나가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북예멘의 지도자들이 통일을 위한 준비를 좀 더 착실히 다진 다음 통일에 임했더라면, 또는 통일협상을 더욱 신중하게 진행했더라면 다시 분열되거나 무력으로 재통일되는 사태는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 예멘의 통일과 독일의 통일은 다르다고 하셨는데.

남북예멘은 정부간 협상을 통해 통일을 이루었고, 독일의 경우는 서독의 일방적인 흡수통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는 국민들의 성원을 받고 국민들의 인정 아래 진행된 통일과정이었고, 예멘의 경우는 정부간의 통합을 우선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에 통일된 이후 종교세력과 부족세력의 반발, 이념적 분쟁들이 발생해 결국은 재분열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 남한 내 일부에서 독일식 통일을 주장하고 있는데

분단의 과정이 다릅니다. 우리는 일부에서 ‘해방전쟁’이라고도 하는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남북한으로 분열되었고, 분단 후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모든 분야에서 다른 조건에서 살아왔고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은 통일에 도움되지 않는 행위

– 최근 논란이 되는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방제 통일방안이라는 것은 국가적 통합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적 통합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의 근간이 되는 헌법이 통일되어야 합니다. 특히 북한은 1998년에 헌법을 개정했는데, 개정된 헌법의 핵심은 김일성을 신격화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방제를 추진하겠다고 한 대통령이 헌법 개정을 통해 신격화를 시도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 마치도 통일이 가까워져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습니다. 이런 행위는 남북한의 통일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남북한의 대화와 협상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시기에 걸맞지 않는 정상회담 추진은 문제가 있습니다.

– 남북정상회담이 시기상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남한의 헌법에는 영토에 대해 남북한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통일이 되어야 하는 민족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남북한 모두 자신들의 헌법을 가지고 각각의 정부를 두어 서로 다른 체제 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멘이 재분열되었던 이유 중 하나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특히 부족, 종교 집단과의 합의 과정을 밟지 않고 정부 단독으로 통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분열의 잠재성을 안고 있었습니다. 남한의 경우만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세력 간에 있어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최소한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지도 않았으며, 국민들에게까지 갑작스런 일로 느낄 만큼 단독으로 처리한 것은 앞으로의 통일논의에 악재로 작용할 것입니다.

우리보다 정치, 경제면에서 준비가 더 많았던 독일의 경우도 10여 년의 긴 시간이 걸리고도 사회적 통합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데, 정부차원에서 무조건적으로 통일을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행동입니다.

▲ 유지호 전 북예멘 대사 ⓒ데일리NK

“김정일 체제 반드시 유지될 필요 없다”

– 재통일 후 예멘은 북예멘 주도로 통합을 서서히 시도했습니다. 남북한 통일을 추구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북한의 체제변화가 선행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유럽의 경우, EU에 가입하려는 동유럽 국가에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을 먼저 요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북한의 체제전환을 위해 남한의 여론을 형성하고 북한정권에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통일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위한 남한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보십니까?

참여정부의 대북 정책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체제전환을 촉구하는 여론을 형성하고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통일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김정일 체제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우선적인 변화는 북한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경제적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조건적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북한 경제상황의 호전 조건은 반드시 정권의 변화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체제전환의 노력이 우선입니다.

예멘의 경우는 경제적 차이가 심하지 않았지만, 남북한의 경우는 수십 배의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의 체제전환 선행과 경제적 차이가 극복되지 않으면 통일은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北, 위법행위 인정하고 국제사회에 진입해야”

– 국제적 관계 형성도 통일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최근 북한을 둘러싼 문제들은 한반도의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는 듯합니다.

북한이 일본 고이즈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할 때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북한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위조달러 문제, 마약문제 등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조달러는 시장경제 체제를 문란시키는 행위입니다. 국제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서라도 북한당국은 솔직해져야 합니다.

– 남북간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일본, 한국은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 만큼의 기술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북한이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주변국가에 핵으로 인한 긴장감이 고조될 것이고, 국제적으로도 북한은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영입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포기하고 위법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한국의 반미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최근 6.25 전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자꾸 반미, 미군철수를 외치고 있는데 이것은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향후 통일에 있어서도 불필요한 행동입니다.

또 여론이 반미 현상을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세계화, 민주화 되고 있는 시점에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해서는 어느 사회에서나 반대 입장을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부차원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해서 여론을 부추기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북한 핵포기 강력히 요구해야”

– 통일의 시기는 언제쯤 되는 것이 좋겠습니까?

북한이 최소한 자신의 경제를 살릴 수 있을 만큼 변화된 후에 논의되어야 합니다. 남측에서 북한을 지지하는 세력이 많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북한의 변화를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체제의 변화가 우선 실현되면 경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통일은 순차적으로 여건이 조성된 후 가능합니다.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 평화체제 구축의 출발점입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위법행위를 인정해야만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유도해 나가는 정책추구가 필요한데, 현 정부의 대북지원 정책은 북한 체제의 변화를 확실하게 유도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할 말씀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통일문제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독일과 예멘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먼저 국민적 통합을 이룬 후 추진해야 합니다. 최소한 경제적 상황과 정치적 민주화가 충분히 성숙한 다음 추진해야 하며, 주변국가와의 이해관계도 잘 반영되어야 합니다.

성급한 통일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반 여건을 조성한 후 진행해야 합니다. 핵협상과 북한의 위법행위 등에 대해 정확히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무조건적인 통일 바라기는 혼란을 더욱 부추길 뿐입니다.

정재성 기자 jjs@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