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가 종교를 ‘민중의 마약’이라고 규정했을 때부터 공산주의는 종교에 대한 무시와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정권을 장악한 공산당은 ‘공산주의 유토피아’의 현실화를 위해 세계 어디에서나 종교 억제정책을 폈다.
그러나 공산권 국가 중에서 수십 년 동안 종교를 완전히 용납하지 않은 국가는 북한과 알바니아밖에 없다.
구소련, 종교 불법화는 없어
북한과 소련의 종교정책을 비교하면 크나큰 차이가 눈에 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직후 소련 공산당은 교회를 반혁명 세력으로 보고, 많은 신부들과 종교인들을 탄압했다. 교회에도 좌익 경향 신부들이 있었지만 종교인들 대부분이 우익이었는데, 이들은 공산당 정권을 ‘사탄의 정권’으로 묘사했다.
1927년 러시아 정교는 정치 불참선언을 한 후에도 소련 정부의 적대감은 식지 않았다. 하지만 1930년대까지 소련 정부는 종교를 불법화하지는 않았다. 반종교 운동이 절정에 달한 1930년대에도 90% 정도의 교회들이 정부에 의해 폐쇄했지만 신도들이 예배를 볼 수 있는 교회는 남아 있었다. 물론 당원이나 간부가 교회에 나가면 출당조치를 당할 수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러시아 정교, 스탈린 시기 민족주의와 결합
1940년대에 들어와 소련 정부의 종교정책은 변했다. 스탈린은 세계 혁명의 승리보다 러시아가 초강대국으로 되는 것을 전략적인 목표로 봤다. 그래서 스탈린 정권은 말로는 국제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제 러시아의 민족주의 전통을 동원시키려 총력을 다했다.
러시아 정교는 오래 전부터 민족주의와 긴밀한 관계가 있었으니 새로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스탈린 정권의 협력자가 되었다. 1943년 이후 폐쇄됐던 교회 일부가 다시 문을 열었고, 신부들이 국가훈장을 받고, 종교적 상징물은 애국적인 상징으로 보게 되었다.
물론 그 후에도 종교의 활동은 여러 가지 제한을 당했고 감시를 받았다. 1943년부터 러시아 교회의 활동을 통제한 ‘러시아 정교 교회문제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지낸 카르포프는 실제 소련 비밀경찰인 KGB 요원이었으며 대좌(나중에 중장) 계급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에도 소련 특수기관은 교회를 감시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여겼다. 소련 해체까지 공산당 정부는 교회를 미심쩍게 바라봤다. 이 압력 때문에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세월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동유럽 국가들의 종교정책은 소련의 종교정책보다 훨씬 온건했다. 어떤 경우에는 교회를 중요한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간주했다.
북, 소련 영향권 벗어나자 종교 말살정책
북한의 종교정책은 이 같은 공산권 국가의 정책과는 다른 점이 많다. 소련의 영향이 컸던 1940년대 말까지 북한 정권은 종교를 억제했으나 일정 정도는 허용했다. 기독교인의 정당으로 여겨진 민주당, 또 천도교를 대표한다고 하는 천도교 청우당까지 용납했다.
그러나 소련 통제에서 벗어나가기 시작한 1950년대 중엽부터 북한은 사회주의 진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종교 말살정책을 시작했다. 1953년~1988년까지 북한에서 예배를 볼 수 있는 교회는 하나도 없었고 당원이 아닌 일반인이라도 종교 활동에 참가하는 것은 ‘사상범’이라고 생각했다. 1988년 이후 북한은 몇 곳의 교회가 생겼으나 이 교회는 ‘외국인 구경용’ 가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구공산권 국가, 체제전환 후 교회부흥
왜 이런 차이가 나왔을까? 물론 소련, 특히 스탈린 사망 후의 소련은 북한보다 자유로운 사회였던 점도 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소련의 경우 러시아 정교는 오래 전부터 민족주의 전통과 국가에 추종하는 전통이 있었다. 북한의 경우에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구소련에서 거의 없어졌던 종교는 놀라운 정도로 부흥되었다. 2005년 어느 여론조사에 의하면 유럽 국가들 중 러시아는 인구 대비 교인 비중이 두 번째로 많다. 교인들의 비중이 제일 많은 유럽 국가도 공산주의 통치 밑에 있었던 폴란드다.
구소련보다 압력이 더 강한 북한은 김정일 체제 전환 후에 교회 부흥도 더 강해지지 않을까?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칼럼니스트(국민대 교수, 역사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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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 -주요 저서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