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정상회담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돌연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한 6자회담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북핵 대화의 틀과 주요 의제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러 정상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며 “북한 체제 보장에 대한 논의에서는 6자회담 체제가 가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당사자로부터 어떤 안전보장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게 되면 북한 같은 경우 국제적 보증 없이는 버티기 불가능할 것”이라며 “양국 간 어떠한 합의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언급했던 김 위원장이 이번에는 러시아가 언급한 체제보장과 6자회담 카드를 적극 활용하면서 미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26일 데일리NK에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나름대로 성공한 회담이었다고 본다”며 “적절한 타이밍에 러시아를 활용해 미국에 압박 메시지를 보냈다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미국이 대북 제재의 키를 쥐고 북핵 대화를 주도해왔다면 북한이 러시아를 통해 체제안전보장이라는 프레임의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홍 실장은 “러시아가 대신 체제안전보장을 강조함에 따라 북한은 북핵 관련 논의에 주도권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앞으로 군사 문제를 중심으로 한 체제보장을 요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25일 북러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직전 ‘남조선(한국) 당국의 배신적 행위는 북남관계를 더욱 위태로운 국면으로 떠밀게 될 것이다’는 제목의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연합공중훈련은 군사분야 합의에 대한 노골적 위반행위’라고 비난한 바 있다.
다만 대화 구도가 변화해도 북한 비핵화 및 정상국가화 전략은 그대로 이어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북한이 ‘체제 보장’ 선(先) 확보를 위해 ‘6자 회담’을 강조하면 이를 무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대화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면서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체제 보장은 북한의 주장이고 6자회담 재개는 러시아의 주장인데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입장을 강조해준 것”이라며 “새로울 것은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부원장은 “북핵 문제에 대한 북한의 기본적인 입장은 미국과의 양자 해결로 풀겠다는 것이지만 후원 세력인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6자회담 구도를 형성해도 괜찮겠다는 전략으로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어떤 대화의 형식이든 북한의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걸 지속 강조하는 게 관건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북러 정상 간 회담이 향후 북미 대화나 남북 정상회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최 부원장은 “북러 회담이 북미대화나 남북 정상회담으로 연결되진 못할 것”이라면서 “북한은 올 하반기로 갈수록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고 한국을 통해 다른 나라의 입장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