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7일 남한에 대한 전면적 대결태세와 강력한 군사적 대응조치 성명을 발표한 배경에는 ‘선군정치’ 방식의 내부 체제결속을 도모하는 한편, 미국 오바마 신정부와 남한 정부를 압박해 북핵협상과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TV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서해 우리측 영해에 대한 침범행위가 계속되는 한 우리 혁명적 무장력은 그것을 짓부수기 위한 전면대결태세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며 “전면대결태세 진입에 따라 강력한 군사적 대응조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또 “우리의 군사적 대응은 역적패당들의 반공화국 적대감 고취와 임전태세 강화에 따른 북침전쟁열이 높아질수록 더욱 더 강력하고 무자비한 섬멸적인 징벌로 될 것”이라는 군사 위협적 발언들을 쏟아냈다.
북한군 총참모부가 남한을 비롯해 대외 문제에 관해 직접 입장을 표명한 것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3회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이례적인 일로 군복을 입은 총참모국 대변인이 직접 TV에 출연해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극적 효과’까지 고려한 흔적을 보였다.
① ‘선군정치’ 앞세운 체제 결속=북한은 최근 들어 김정일 와병설, 후계 구도 문제, 올해 경제상황 불안정 등 여러가지 내부 불안 요소에 휩싸여 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북한 내부는 여러가지 험난한 국제정세와 내부 환경 속에서 원칙과 실천 등 선명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라며 “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충성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가시화된 행동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특히 “대남 메시지 성격도 있지만, 내부 결속을 위한 의미가 강하다”며 “혼란스러운 북한 내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군부가 앞장서는 이른바 ‘선군정치’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나 이 모든 조치는 김정일의 결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도 “이번 성명 발표의 배경에는 내부적인 요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일이 올 초부터 연달아 군부대를 시찰하고 있고,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조치”라고 분석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도 “총참모부 대변인이 군복을 입고 직접 나와 성명을 발표하는 ‘극적인 효과’를 통해 내부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내부가 불안정할 때 가장 안정적인 조치는 대남 강공책을 펴서 내부 결속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역으로 말해 북한의 대남위협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이 그만큼 높다는 해석이다.
조선중앙TV를 비롯한 북한 관영 매체들이 북한 총참모부 대변인의 성명을 이틀에 이어 반복해서 보도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북한 노동신문도 이번 성명에 대한 ‘전폭 지지’ 입장을 밝히는 기업소 근로자들의 모습을 18일 소개했다.
② 對美 압박메시지…관계개선 안 하면 군사긴장 위협=이번 성명은 오는 20일 취임을 앞두고 있는 미국 오바마 정부에 대한 압박 메시지라는 분석도 이어진다.
유 교수는 “시기적으로 볼 때, 미국을 상대로 한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다”며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미 행정부의 새 진영이 기대하는 만큼 호의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는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조급함이 생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해 미국에 관심을 끌고, (미-북)회담을 위한 사전포석 용”이라며 “북한은 핵무기뿐 아니라 서해안 등에서도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재래식 군사력이 있다는 것을 미국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실장도 “북한은 한반도 군사적 긴장 조장을 통해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에서 북한 문제를 주요 이슈로 부각시키려는 것”이라며 “북미관계 개선이 늦춰질 경우 남북간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이자, 북한문제를 뒤로 미루지 말라는 요구”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7일 별도의 성명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핵문제는 별개의 문제”라며 “미국의 핵 위협이 남아있는 한 관계정상화가 이뤄져도 핵보유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외무성의 이날 성명은 최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내정자가 상원 인준 청문회 자리에서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제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발언했던 것에 대한 ‘반박용’으로 풀이된다.
최 실장은 이에 대해 “북한이 미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으면서 ‘핵포기는 할 수 없다’는 의지를 다시한번 밝힌 것”이라며 “관계 개선에 대한 메시지는 계속 보내면서 핵 문제는 물고 넘어지지 말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초빙연구원인 박선원 전 대통령 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북한의 발표는 단순한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관계 조성이 목적이 아니라 의도된 핵보유국 굳히기 전략의 하나로 봐야 한다”면서 “2005년 2월 핵보유 선언과 2006년 핵실험에 이은 철저하게 계산된 북한의 제3의 충격전략”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