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천리마운동 선구자’는 南출신

북한 언론매체들은 북한 당국이 최근 다시 꺼내든 1950,60년대 천리마운동의 ‘선구자’로 남한 출신의 진응원씨를 내세우고 있다.

월간 ‘조국’ 작년 10월호 등 북한의 각종 매체들에 따르면 고향이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읍 노탑리인 진씨는 6.25전쟁 때 북한이 남쪽으로 밀고 내려왔을 때 북한군에 입대했다가 국군에 포로가 됐으나 포로교환 때 북쪽으로 송환된 뒤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용해공(용광로의 벽을 쌓거나 손질하는 노동자)으로 북한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전후 북한에선 포로 출신의 경우 대부분 제일 밑바닥으로 취급돼 좋은 직장을 갖기 어려웠고 게다가 남한 출신이라는 점은 큰 장애요인일 수밖에 없었다.

진씨가 어려운 처지를 벗어날 계기를 잡은 것은 1956년 12월28일 당시 김일성 주석이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찾았을 때.

기업소 간부, 모범 노동자 등이 참석한 간담회 자리에서 진씨는 용광로의 용해시간을 단축시키는 방안을 건의함으로써 이후 ‘천리마운동’의 모범으로 북한 사회에 선전됐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지도했다는 북한의 대표적인 체제선전 영화 시리즈 ‘민족과 운명’의 노동계급편 주인공으로 등장해 북한 사회에 노동자들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선전됐으며, 1990년 사망한 뒤엔 남한의 국립묘지격인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북한의 대남방송인 평양방송은 김정일 위원장이 주창한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 분위기 조성의 일환으로 8일 아버지를 따라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직장장을 맡고 있는 그의 아들 영일씨를 출연시켜 아버지를 회고케 했다.

영일씨는 “저의 아버지를 당시 강선제강소(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의 과거 명칭) 용해공, 그 후에는 작업반장, 천리마 선구자로 내세워준 수령님(김일성)께서는 남조선에서 학교 문전에도 가보지 못했던 저의 아버지를 공업대학에도 보내주시고 직장장으로까지 내세워 주셨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천리마운동의 ‘선구자’인 진응원씨의 아들 영일씨를 김책공업대학에 다니도록 해줬고, 영일씨의 형제들도 김일성종합대학과 의학대학을 졸업해 연구원과 병원 원장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진응원씨는 평소 남한에 있는 혈육과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영일씨는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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