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에 90년대 중반 대아사 기간(이른바 ‘고난의 행군’)과 유사한 제2의 식량난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3일 <조선일보>는 최근 중국을 방문한 북한관리의 말을 인용,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북한당국의 내부 주민강연자료에서 나왔다”고 보도했다.
북한관리의 이 발언은 최근 리처드 레이건 WFP(세계식량계획) 평양사무소장이 보고한 월간보고서와 DailyNK 중국취재팀이 5월 30일 취재 보도한 ‘평남 덕천시의 20여명 노인 집단아사 사건’과 일치하는 내용이어서 북한의 식량사정이 다시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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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극심한 식량난 배제못해
탈북자들에게는 죽음의 악몽과 같은 ‘고난의 행군’은 더 이상 떠올리기도 싫은 추억이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은 “김일성과 빨치산 1백여명이 1938년 겨울 일본군의 포위를 뜷고 중국 몽강현의 남패자에서 압록강까지 온갖 굶주림을 이겨내며 행군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김일성 역사’ 책에 나오는 용어다.
김정일은 95~97년까지 극심한 식량난에 봉착되게 되자 이를 ‘고난의 행군’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동원, 주민들에게 굶주림과 맞서 싸울 것을 지시한 바 있다.
탈북자들이 생겨난 것도 바로 이 ‘고난의 행군’ 때문이다. 아직도 남한과 외부에는 그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 있지 않지만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굶주림으로 숨진 사람들이 3백만 명 이상으로 파악되고 있다. 풀뿌리와 콩뿌리로 연명하다 못해 97년 경에는 평양주변구역에서 ‘인육’을 팔다 적발되어 공개처형된 사례까지 있었다.
북한당국은 처음에 ‘고난의 행군’을 95년도 한 해만을 규정했다가, 96년에는 강도를 더 높여 ‘고난의 강행군’으로 설정했다. 97년에도 당국의 조치가 없자 주민들은 자체로 ‘고난의 강강행군’ 이라는 말을 만들어 김정일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북한의 식량난은 외부세계의 지원으로 근근히 버텨왔으나, 김정일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여 국제사회의 지원도 줄어들게 되었다.
앞으로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가 닥칠 경우 90년대 중반과 유사한 식량난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