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지원 구호물자 주민에 ‘그림의 떡’

▲ 함경북도 청진 수남시장 모습. 각종 구호식량들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RENK>

지난해 12월, 북한 반체제 인사 김만철씨(가명)가 60분 분량 테이프 2개를 가슴에 품고 혹한의 두만강을 넘었다.

이 테이프에는 북한으로 들어가는 국제사회의 구호물자가 부정판매 되고 있는 실정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독재정권의 ‘조직적 부정판매’는 국제원조단체와 관계국들의 인도주의적(?) 묵인 하에 지난 10년 동안 벌어져 왔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전부터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탈북자 지원단체나 NGO활동가들에게도 ‘상식’으로 통한다. 북한에서 인도적인 지원물자를 받아 본 경험이 있다고 말하는 탈북자는 아주 드물다. 북한 정부는 물론 관계국들이나 국제원조단체까지 이 추악한 현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공공연한 비밀’의 그늘에서 300만 명이 넘는 북한 주민이 아사(餓死)했다.

원조물자 빼돌려 장마당에 되팔아 폭리

▲ 포장도 뜯지 않고 판매되고 있는 구호식량

김만철씨는 지난해 7월 초, ‘용천폭발사고’(4월 24일)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에 함경북도 청진에 있는 ‘수남시장’의 풍경을 촬영했다. 김씨는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수남시장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구호식량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장마당에서는 한국 정부, 대한적십자사, WFP(세계식량계획), USAID(미국국제개발처), 영국 정부 등이 보내준 식량들이 팔리고 있었다. 장마당 거리에 진열된 다양한 곡물들은 극도의 빈곤과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일반 인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실제로 RENK(구출하자 북한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가 구호식량의 부정판매 증거를 입수한 것은 최근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2003년 8월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에서 한국, 미국, WFP의 구호식량이 국정가격의 4배에 달하는 초고가(超高價)에 팔리고 있는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구호활동과 관계된 기관들은 ‘감시 활동을 강화하겠다’는 상투적인 핑계로 적당히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용천주민 구호물자가 청진에서 팔려

▲ 이 아이들을 위한 구호물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용천사건 당시 북한 당국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사건을 발표하였고, 국제사회는 대규모 긴급 지원을 실시했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로 고민하던 일본 정부도 WHO(세계보건기구)를 통해서 10만 달러에 상당한 의료물자를 제공했다.

그런데 용천에 대한 구호물자가 북한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두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청진 장마당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용천사고 구호물자’가 발견되었다. 평안북도 용천(서해쪽)부터 함경북도 청진(동해쪽)까지는 직선거리로만 500Km 이상 떨어져 있다. 북한의 철도는 내륙 곳곳을 우회하므로, 실제의 운송거리는 2배에 가깝다. 현재 북한의 열악한 교통 사정(운송수단 + 연료상황)을 감안하면, 조직적인 부정유출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규모의 크기로 봐도 무분별한 개인사업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국가기관들이 결탁하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복합사업’인 것이다.

구호물자로 폭리 취하고 있는 북한 당국

▲ 한국에서 보낸 쌀은 1kg에 430원에 판매되고 있다. 국정가격의 10배에 이른다.

수남시장에서 판매되는 원조곡물에는 경악할 만한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쌀 1kg이 430원 전후. 당시 국정가격(쌀 1kg당 46원)의 약 10배에 이른다. 지금 북한의 일반 노동자의 월급은 북한돈 2,000~3,000원 수준. 월급으로 쌀 6kg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미가동 공장(전체 공장의 80%)의 노동자들는 무급상태다. 긴급구호 식량은 본래 재난 피해자들에게 무료로 배부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장에서 초고가에 팔리고 있다면, 누군가의 엄청난 이익을 위해 부정적으로 유출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2년 전 ‘혜산 장마당 동영상’이 공개됐을 당시, 한국 정부나 국제원조기관들은 ‘곡물 자루의 재활용’을 주장했다. 즉, 자루의 내용물은 원조 곡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극단적으로 생필품이 부족한 북한에서 곡물 자루는 귀중품이다. 닳아 떨어질 때까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심지어, 정치범 수용소나 노동단련대의 죄수들은 국제적십자 상표가 붙은 곡물 자루를 이용해서 토사운반 같은 중노동을 해야 한다. 웃음도 나오지 않는 희극이다.

하지만 지난번과 같이, 이번 동영상에도 미개봉된 곡물 자루들이 분명히 발견됐다. 따라서 ‘재활용’이라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층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촬영 당시에 김만철씨가 상인으로부터 ‘곡물의 출처’를 들은 것이다. 상인은 “용천으로부터 들어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부정유출에 관한 증언은 원조곡물에만 그치지 않는다. 의료품도 이와 같다. 약을 판매하는 시장의 상인은 “UN의 약이니까 안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인은 ‘UN’이라는 품질보증을 강조하며 흥정하고 있는 것이다.

군과 당기관이 구호물자 빼돌려

그렇다면 구호물자를 부정판매하는 범인은 누구인가? 바로 인민군과 당기관이다. 그런데도 국제단체나 관계당국은 모른 체 한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단기간에 대량의 구호물자를 원격지까지 옮기는 능력(차량+연료+통행증)은 인민군과 당기관밖에 없다. 이러한 상식에 NGO <좋은벗들>은 한층 더 새로운 자료를 덧붙였다.

<좋은벗들>은 지난 1월 17일, 북한 당국이 비밀리에 책정한 ‘구호식량의 분배원칙’을 발표했다.

* 1차 할당 : 인민 무력부(전체량의 약 30%)
* 2차 할당 : 특수 기관(약 10%)
* 3차 할당 : 군수산업 관련 공장, 기업소(약 10%)
* 4차 할당 : 각 시, 군의 양정사업소(약 50%)

주된 내용은 동영상에서 나타났던 사실과 똑같다. 수남시장 동영상과 <좋은벗들>의 자료를 합쳐보면,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부정유출의 구도가 분명하게 잡힌다.

구호식량의 반은 인민군과 군수관련 산업이 우선적으로 횡령한다. 나머지 반이 ‘양정사업소’(舊양정부)에 들어간다. 양정사업소는 식량배급을 맡는 행정기관으로, 공적 공급제도(국정가격에 기준하여 식량공급)를 실시하는 책임을 진다. 북한 당국은 2002년 7.1조치(식량 배급제도의 정식 폐지) 이후, 전주민들에게 최저필요량의 절반을 염가의 국정가격(쌀 1kg=40원)으로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인민의 30%도 되지 않는 특권계급에게만 판매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는 혁명열사 가족, 행정부문, 당부문, 검찰,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등의 순서다. 다시 말해 양정사업소는 일반 주민들과 무관한 단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호기관이나 각국 정부는 구호식량이 양정사업소까지 도착하면, 기본적인 ‘모니터링’(감시활동)은 충분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인민군에 배급된 식량도 장마당에 되팔아

구호식량은 ‘무상배분’이 원칙이다. 구호식량이 양정사업소에서 유상매매 되고 있는 사실이 폭로되자, 당황한 한국 정부는 “일단 유감이지만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며 용인하는 자세를 보였다. 백보 양보해서 양정사업소에서 ‘국정가격’으로 팔린다면 필자도 꺼림칙하지만 일부분 동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태는 한국 정부의 상상과는 다르다. 구호물자들은 ‘국정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10배 이상의 초고가에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군을 예로 들어보자. 국가로부터 구호식량을 배급받은 군간부들은 일반 병사들에게 정량보다 적게 배급한 나머지를 모아 시장에 판다. 그렇게 하여 폭리를 취하고 있다. 군수산업의 간부들도 같은 수법으로 부정축재를 한다. 이렇게 해서 장마당에는 구호식량의 곡물 자루가 꽃 피듯 넘쳐난다. ‘군대가 먹고도 남을 만큼 원조해주면 주민들에게도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궤변은 망상에 불과하다.

이것을 끝까지 인도적 원조라고 말하는 것은, 까마귀를 백조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정확하게는 특권계급과 독재기관에 대한 ‘자금원조’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런 원조라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오히려 더 인도적이다.

투명분배 확인 못하면 독재자 돕는 꼴

▲ 지난 10년간 북한 당국은 막대한 구호물자를 받아들였지만 인민들의 빈곤은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 의회는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장래에 있을 수 있는 ‘대북제재조치’에서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외하고 있다. “식량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라는 미국식 특유의 발상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식 ‘인도주의’에도 조건은 붙는다. 동법 제2조 ‘필요에 따라서 북한을 구한다’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구호물자는 정확히 전달, 분배, 감시되어야 하며, 그것이 정치적 대가 혹은 압제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제202항b).

이 조건은 국제기관의 공여분을 포함, 미국이 제공하는 모든 인도주의적 원조에 적용된다. 그러나 청진 수남시장에서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보내준 곡물 자루도 발견됐다. 최근 <미국국제개발처>가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북한에 들어가는 구호물자가 투명하게 분배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식량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는 미국인들의 신념은 ‘김정일 독재의 진지(陣地)’에서 철저히 배신당하고 유린되고 있다.

북한은 국가차원에서 구호물자를 부정유출, 판매하고 있다. 이것을 완전하게 제거하지 않는다면 인도주의적 지원은 무효이고, 오히려 북한인민들에게 유해(有害)할 뿐이다.

이영화 / 일본 간사이대 경제학과 교수


– 일본 오사카 출생(1954)
– 평양 조선사회과학원 유학(1991)
– (現)간사이(關西)대학 경제학부 조교수
– (現)<구출하자! 북한민중/ 긴급행동네트워크(RENK)> 대표
– 주요저서 <북조선 수용소군도>, <재일 한국, 조선인과 참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