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 ‘시장 있어야 생존’ 70% 넘어

▲ 함경북도 청진의 수남시장 ⓒ RENK

올해는 북한이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를 단행한 지 5년째 되는 해다.

7.1 조치후 북한내부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종합시장으로 확대된 농민시장(장마당)은 북한주민들의 경제활동의 기본 터전으로 자리를 굳혔다.

농민시장이 종합시장으로 확대된 것은 북한당국의 경제개선 의지보다는 북한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장마당을 통한 경제 활동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공식적으로 고수하지만 장마당 활성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에서 농민시장은 일부 농산물과 채소류 외에는 일체 상품을 매매할 수 없었으나 80년대 이후 일반주민들에 대한 정상적인 생활필수품 공급이 되지 않자 장마당에 국영상점에 없는 상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장마당에 상점에 없는 상품들이 국가가격의 몇 배로 팔리기 시작하자 북한당국은 이것을 ‘암거래’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했다.

암시장 경제(black market)는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냈다. 지금은 북한 주민들의 경제생활이 시장을 떠나 유지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왜냐하면 국가공급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식량공급마저 단절된 현실에서 먹고 사는 모든 생필품을 시장을 통하지 않고는 구할 수가 없다. 또 생필품을 장만하는데 필요한 돈을 벌자면 역시 장사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90년대 대량 아사가 ‘시장’ 만들어

그러나 암시장 덕택으로 살아가면서도 북한 사람들은 암시장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그저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1980년대 이전 사회주의 공급제가 실현되던 시기에도 공급 외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을 북한에서는 ‘개인 이기주의자’라고 말했다. 이런 사람들은 당국에서 장사를 ‘비사회주의적 현상’이라고 강력히 통제하는 가운데서도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에 장사를 하다 법적문제가 제기되면 엄격히 제재를 받았고 전 사회적으로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없애기 위한 투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경제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고 특히 이른바 ‘고난의 행군’(대량아사 사태)이 시작되자 생존을 위한 장사를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거세졌다.

법적으로 아무리 통제해도 사람들은 생사를 판갈이 하는 갈림길에서 장마당에 매달렸다. 장사를 해서 한푼두푼 벌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열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고난의 행군’은 결국 사람들을 장마당 경제의 흐름에 몸을 담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음을 체득시켰고, 돈 중심의 가치관과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다해야 한다는 생존의지를 불러 일으켰다.

라진-선봉으로 뛰는 ‘달리기 선수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는 시각은 시대별로 다르다. 1990년대 전까지 장사꾼들을 개인 이기주의자로 보고 사회주의 사회에서 살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비판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장사를 해서라도 먹고 살아남는 사람이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평가되면서 장사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굶어죽는 사람들은 ‘바보’라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결국 암시장 경제 확대는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현실을 직접 겪고나서 북한 사람들 스스로가 생존을 위한 비상구로 선택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암시장이 커지자 당국의 통제가 더욱 강화됐다. 그러나 통제하는 보안원(경찰)마저 살기 어려워지자 권력의 비리가 점점 늘어났다. 또 그들의 가족, 친적들까지 장사해서 먹고 살게 되자 암시장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앞집 아저씨, 옆집 아들이 굶어죽고 영양실조에 걸린 자식을 살리기 위한 주민들의 생존투쟁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1991년 12월에 자유경제무역특구로 지정된 나진-선봉지역은 처음에 공무 외에는 누구도 드나들 수 없도록 엄격히 철조망을 치고 통제했다.

그러나 심각한 경제현실은 돈만 있으면 필요한 생활 필수품들을 살 수 있는 나진-선봉으로 사람들이 철조망을 넘나들게 만들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몇 명씩 한 조가 되어 기관, 기업소들의 화물자동차를 대여해서 나진-선봉으로 들어가 돈 주고 물품을 실어온 다음 장마당에서 팔았다.

‘北 시장확대 햇볕정책 영향’ 주장은 뭘 모르는 소리

90년대부터 북한의 국가경제는 생산가동의 80% 이상이 멈췄다. 그러나 나진-선봉으로부터 오는 중국 상품들과 세관(교두)을 통해 중국 조선족들이 갖고 온 물품들이 시장에서 대대적으로 매매되었다.

그러자 북한 당국은 국가공급이 실현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2002년 7·1조치를 공표했다. 이후 농산물만 사고팔 수 있는 농민시장도 장세를 받으면서 생활필수품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상품에 대한 판매를 허용하고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이름을 바꾸도록 했다.

이와함께 노동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나 경노동 부문에 종사하는 남자들에게 한하여 장마당에서 장세를 내고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지금 북한의 종합시장은 70~80% 주민들이 먹고 사는 데 없어서는 안될 생존현장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암시장의 싹은 1980년대 초부터 개별 사람들 사이에서 싹트기 시작하여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맞으면서 결정적으로 생존을 위한 터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남한에서는 햇볕정책 덕분에 북한에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지나온 북한의 현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명확하다. 생존을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에서 시작되어 7·1조치를 통해 농민시장→종합시장으로 변화한 것이다.

말하자면, 굶어죽은 300만 북한주민들의 희생 위에서 주민 스스로의 자구노력에 의해 시장이 형성돼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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