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 눈에 비친 ‘촛불시위’…“실망 크다”

2일 오후 이곳 단둥(丹東)의 한 음식점에서 북한 선교단체 관계자로부터 편지 한 장을 건네받았다. 편지에는 남한에서 두 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촛불 시위’를 보는 북한 주민의 심경을 담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편지를 건넨 이 관계자는 “북한에서도 남한 TV를 시청하는데 매일 촛불시위 관련 방송이 이어져 이유를 궁금해 했던 모양이다. 이곳 보호 주택에 설치된 TV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촛불시위 관련 소식을 계속 시청해왔던 것 같다. 그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남한 상황에 대해 너무 답답해 하더라.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기자를 통해서 전해 줄테니 편지를 써보라고 했다. 그래서 이틀 전에 편지를 썼다”고 그간 과정을 설명했다.

편지를 쓴 북한 주민은 지난달 초 여행증명서를 가지고 북한을 나왔다고 한다. 그가 북한을 나오기 전인 6월에도 남한에서 촛불시위가 한창이었고, 지금도 그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 ‘여행증명서’를 가지고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주민이 남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에 대해 느낀 답답한 심경을 편지에 담아 ‘데일리엔케이’에 보내왔다. ⓒ데일리NK

참고로 북한에서도 남한 TV를 시청하는 지역이 꽤있다. 평양에서도 대동강 주변 지역과 황해도, 서해와 인접한 지역은 KBS 1TV가 비교적 선명하게 나온다. 이들은 대개 KBS 1TV 뉴스를 통해 남한 소식을 접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송송?’이라는 ‘괴담’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로 인해 수도 한복판이 매일 시위 군중으로 뒤덮이고 결국 내각 총사퇴라는 사태까지 불러온 한국의 상황, 과연 북한 주민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편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각자 국민들의 판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도 대규모 시위와 진압의 반복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져든 것이 안타깝다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편지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이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혼란한 남한 사회가 북한 주민들에게 큰 실망을 주고 있다는 점이 강조돼 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께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편지는 “몰래 시청하는 남한 TV에서 행복하고 부강 번영하는 국민 여러분들과 대한민국의 긍지 있는 모습보다 너무나 상반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초(촛)불시위 투쟁 장면을 보게 되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어, 이렇게 국민 여러분들께 북한 인민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편지를 쓸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라며 작성 동기를 밝혔다.

그는 “북한 인민들은 풀죽으로 끼니를 에(때)우며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도 북한 정권에 기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의 안정된 발전과 국민들의 생활 향상에서 신심을 잃지 않고 모든 고통을 이겨나가고 있습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큰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는 대한민국에서 능히 국민 여러분들과 각자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놓고 두 달이 되도록 밤을 세워가며 초불시위를 하는 모습은 참으로 북한 인민들에게는 실망과 비관을 주고, 북한 당국에는 대한민국을 비웃을 수 있는 기회와 자기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조건만을 마련해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 인민들은 ‘남한의 국민들은 왜 시위투쟁을 하는가? 쇠고기가 위험하게 느껴지는 분들은 자시지(드시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닌가?’ 하고 실망과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또 “소비의 자유에 따라 서로가 결심으로 간단히 해결할 문제가 시위로, 치안을 위한 진압으로, 더욱이 ‘강경진압을 한다’고 까지 이르게 되었고, 내적인 불안정이 국제사회와 특히 북한 인민들까지도 실망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1년에 몇 번 밖에 고기 맛을 못 보는 굶주린 북한의 인민들이 남한의 국민 여러분들께 부탁한다”면서 “대한민국의 국민답게 세계와 북한의 선두 자리를 안정하게 지켜 나가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이 싸움이 잦은 나라라는 세계의 비웃음을 받지 말았으면 한다”면서 “언제나 평화와 안정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어 주십시오. 북한의 미래에 희망만을 국민 여러분들께서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편지를 맺었다.

북한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국력과 민주주의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이렇게까지 혼란한 상황으로 빠져들어서야 되겠냐는 북한 주민의 읍소에 가슴 한켠을 시리게 했다. 선교 단체 관계자에게 “이 주민의 자세한 속내를 들어보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 답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