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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이 급감하자, 최근 주민들의 시장 의존도가 좀더 높아지는 징후를 나타내 주목되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 먹고 살 길을 찾으려는 주민들이 집단영농 지원이나 공장 동원에 나갈 경우에도 점심 대접과 ‘일당’에 해당하는 돈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져, 주민들의 ‘시장화 의식’이 차츰 확대되면서 당국의 직접통제는 약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함흥에 거주하는 주민 J씨는 8일 데일리NK와의 전화통화에서 “공장의 모래 푸기 동원과 근처 집단농장 지원을 나가도 점심대접은 기본이고 일당에 해당하는 돈까지 받는다”고 전하면서 “핵실험 후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매일 ‘강성대국’ ‘선군 정치’를 떠들지만 주민들의 관심은 오로지 돈”이라고 말했다.
J씨는 최근 중국산 중고 가전제품을 싸게 구입하려 신의주에 왔다가 기자와의 통화에 성공했다.
J씨는 “함흥 주민들은 핵실험 후 외부의 지원이 끊겼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며 “그러나 이제 장사를 통제하면 다 굶어 죽으라는 소리나 같기 때문에 주민들이 동원에 나가면 장사를 못하는 대신 돈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주민들이 동원에 나오지 않을 경우 북한당국이 그 시간에 해당하는 돈을 국가에 바치라고 요구했으나, 오히려 주민들이 장사를 못하는 대신 동원행사에 ‘일당’을 요구하는 사례가 전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같은 사례는 ‘신년사 관철 행사’ 등 국가동원이 아니라, 집단농장이나 일부 지역 공장에서 나타난 현상이긴 하지만 주민들의 자활 의식과 시장 의존화가 그만큼 확대된 것으로 분석돼 주목된다.
J씨는 “굶어 죽을 사람은 오래 전에 다 죽었고, 튈 사람(한국, 중국 간 사람)도 거의 다 갔다. 지금 남은 사람들은 돌밭에 올려놔도 살 사람들”이라며 “이제는 국가를 믿지 않고 시장에 의존하고 산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북 김천에서 살고 있는 함흥출신 이모씨(2005년 말 탈북)는 “2003년 이후 각 공장에서 본격화된 ‘독립채산제’ 영향으로 일당을 받고 일한 적이 있다”며 “공장 동원행사에 일당을 요구하는 것도 그 영향이 아닌가 싶다”고 관측했다.
이씨는 또 “이제는 주민들이 나랏일도 공짜로 안 해준다는 의식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J씨와의 일문일답
-요즘 어떻게 살아가나?
데꼬(‘되거래’의 함흥 사투리)해서 산다. 돈이 급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테레비나 전축, 자전거를 싸게 사서 다시 다른 사람에게 되팔아 돈을 번다. 운 좋으면 하루 5만원(한화 1만5천원 정도) 벌 때도 있고 못 벌면 하루 1만원(한화 3천원) 벌 때도 있다. 허탕치는 날도 많다.
-요즘 동원행사 때 주민들이 ‘일당’을 요구한다는 게 무슨 이야기인가?
요즘은 직장에서 농촌동원을 나가도 점심대접은 기본이고 하루 때거리(하루 식량)도 받는다. 과거에는 동원이라면 무조건 일만 해주었는데, 지금은 성천강 모래 푸기 동원행사도 하루 일당을 받아야 사람들이 일한다. 2003년 이후 활성화되기 시작한 ‘독립채산제’ 영향으로 이제는 직장 간부들도 공짜로 일 시키는 것을 어려워 한다. 대가가 없으면 노동자들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벌이 해서 사는 사람들은 1천원이라도 벌려고 매일 시장에 나온다. 시장에 나가야 점심, 저녁이라도 먹고 단돈 1천원이라도 만질 수 있다. 여기 사람들 이제는 누구도 안 믿는다. 시장에 나가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밑천은 얼마나 가지고 장사하나?
나는 30만원(한화 9만원) 정도 갖고 했다. 3년 전 제대하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장사밑천 하라며 20만원(한화 6만원)을 주셨다. 의사인 어머니가 당 간부들과 부잣집에 왕진 가서 치료하면서 번 돈이다.
-밑천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지금 함흥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은 외부지원이 끊어졌다는 사실을 대강 알고 있다. 테레비와 신문에서 경제제제를 받고 있다고 떠들어서 안다. 허구한날 떠들던 소리라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도 시장만 통제하지 않는다면 다 사는 방법이 있다. 식량배급 없이 산 지가 10년이 넘었다.
함흥사람들 굶어죽을 사람은 다 죽고 튈 사람(한국이나, 중국으로 탈출)들도 다 갔다. 노약자와 병자, 아이들까지 다 죽었다. 지금 있는 사람들은 돌밭에 올려나도 살 사람들이다. 나랏일도 공짜로 안 해준다는 판인데, 옛날의 앉은 자리서 굶어 죽던 함흥사람들이 아니다. 시장만 있으면 산다.
-식량은 주로 무엇을 먹나?
쌀밥을 먹는다. 공기 밥을 먹는다. 지금은 옛날과 다르다. 옛날에는 강냉이 밥이나 죽도 양이 중요해 많이 먹어야 했다. 그나마 못 먹어 굶어 죽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식량도 부족한데 양이라도 줄여 조금 먹어도 알짜만 먹으려고 하고 칼로리 있는 것을 따진다. 지금 내 주변 사람들 10명중, 5명은 쌀밥 먹고 산다. 쌀밥 먹으려고 매일 하루가 생존을 위한 전투다.
(J씨는 지금은 평균 3, 4명 가족들이 모두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못벌어도 1인당 천원, 가구당 3,4천원씩은 번다고 말했다. 1월초 현재 쌀값은 대략 kg당 1000~1100원 선이다.)
-전기 사정은 어떤가? 해가 지면 무엇 하나?
전기 공급은 여전히 안좋다. 때로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CD로 가족끼리 몰래 본다. 낮 시간대에 간간히 주는 전기를 집에 있는 충전기에 만(滿)충전시킨 후 변류기를 이용하여 TV와 DVD를 본다. 솔직히 그 재미에 산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어디서 구했나?
시장에서 돈만 주면 쉽게 구할 수 있다. 물론 복제품이다. 한국드라마나 영화는 CD 한 장에 1만원 한다. ‘노란 것'(성인용)도 있다. 지금은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
-당국이 장마당 물품 통제 안하나?
중국에 친척방문을 가거나 북중 무역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아랫동네(남한)와 윗동네(중국) 영화와 드라마가 유통되고 있다. 지금은 당 간부들과 권력층들이 중국에 친척방문 가는 사람들이나, 무역 하는 사람들에게 몰래 부탁하기도 한다.
-몰래 보다 발각되면?
참~ 요즘은 보안원, 보위원들도 다 본다. 발각되면 회수해 가서 자기네들이 몰래 본다. 요즘 20~30대 젊은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대부분 본다.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못본 애들은 같은 축에 못 낀다. 말(대화) 상대도 안 된다. 보면 엄벌에 처한다고 지시가 내려와도 내 주위에서 그거 보다가 처벌받은 사람은 못 봤다.
-어떤 영화와 드라마를 봤나?
‘가을동화’ ‘겨울연가’ ‘대장금’ ‘태조왕건’ ‘이순신’ ‘시라소니’ ‘인간시장’ ‘햇빛 아래서’ 등등을 보았다. 미국 영화 ‘타이타닉’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