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도 브랜드 좋아한다.

▲ 북-이란전 김일성경기장의 한국기업 광고판

북한주민들도 명품(名品)을 좋아한다. 90년 대 이전 북한에 유입되는 외국산 제품들은 대체로 일제(日製)와 유럽상품이었다.

이런 제품은 째포(일본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이나 외교관들, 당간부 등 고위급의 자식들만 만져볼 수 있었고, 일반주민들은 꿈도 꾸지 못했다.

북한주민들은 삼성, 현대, 롯데, 럭키 등 세계적인 기업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제품을 이용할 만큼 남한 물품이 일반화 되지 않았다. 84년 북한의 수재민 구호물자의 ‘대치상품’으로 들여보낸 남한산 전자제품과 라면은 중앙당 간부들에게만 공급되었다.

주민들이 외국 브랜드를 접하는 통로는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일본과 미국에 친척을 둔 사람들이 보내오는 물건을 통해 알게 된다.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미츠비시, 닛산과 같은 일본 브랜드는 북한에 널리 알려졌다.

주민들 브랜드이름을 어떻게 아나?

둘째, 국제경기장에 등장하는 광고판을 보고 브랜드의 이름을 익히게 된다. 축구, 탁구 등 국제경기를 진행하는 경기장에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등장하게 된다. 영어를 좀 아는 사람들은 광고판을 가리키며 ‘저건 어느 나라기업인데, 아주 유명하다’는 식으로 아는 체 한다.

주민들은 경기장 광고판에 등장하는 이름을 새겨두었다가, 그 브랜드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값을 따지지 않고 구입할 만큼 열렬하다. 파는 사람도 유명 브랜드의 가치를 봐서 값을 엄청나게 높여 부른다.

셋째, 노동신문과 기타 잡지들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다. 노동신문은 6면으로 된 노동당기관지다. 이 신문 1~4면은 북한 정치, 경제, 문화소식을 다루고, 5면과 6면은 남한정세 및 국제뉴스를 싣는다. 바깥 정세가 궁금한 주민들은 5면과 6면을 주로 눈여겨본다.

노동신문은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을 외국에 예속된 매판기업이라고 쓴다. 주식형태로 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외국의 예속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삼성이나 현대는 껍데기만 남한이고, 기술과 기계들은 모두 외국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브랜드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번 ‘8.15 민족통일대축전’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던 북한대표단 성원들이 휴대했던 삼성 디지털 카메라와 명품브랜드 핸드백이 카메라에 포착된 바 있다.

이들은 대표단을 위해 동원됐던 현대자동차의 ‘에쿠스’와 쌍용자동차 ‘체어맨’을 타고 입을 딱 벌렸다고 한다. 외국자본에 예속되었다던 현대와 쌍용이 만든 차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몇 달치 월급 절약해 브래지어 두 개 장만

브랜드에 제일 관심 있는 계층은 간부들이다. 중앙당 간부들은 주민들 앞에서 외국제를 쓰지 말라고 교양하고, 뒤에서 던힐(DUNHILL)과 같은 양담배를 즐겨 피운다. 면도기나, 녹음기 같은 가전제품들은 ‘러시아제는 어떻고, 일본산은 어떻다’는 식으로 브랜드에 대해 일일이 평가할 만큼 지식도 풍부하다.

일반 주민들은 배는 좀 고파도 기성복 한두 개쯤은 입어야 위신이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성들은 몇 달치 월급을 쪼개 건사했다가, 달러를 바꾸어 외화상점에서 외국산 브래지어 한두 개와 구두를 장만한다. 굽이 높은 구두와 브래지어는 아꼈다가 명절날이나, 연인을 만날때 착용한다.

남자들도 외국 브랜드 점퍼나 혁띠(벨트), 넥타이를 마련한다. 북한남자들 속에는 ‘남자라면 혁띠(벨트), 넥타이, 구두는 외제를 써야 기본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나돈다.

외국 브랜드에 대한 믿음도 높다. 조총련동포들은 일년에 한번 정도 중고옷을 북한친척들에게 보내준다. 중고 옷들은 배에서 내려져 궤짝을 뜯기도 전에 불티나게 팔린다. 구매자들은 점퍼, 팬티, 내의, 파카의 박스를 검사하지도 않고 돈을 지불한다. 그만큼 가짜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본제보다 남한제가 선호가 높다.

▲ 대학생들은 넥타이에 관심이 가장 높다

‘로스안젤러스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구먼’

필자가 북한에 있을 때 ‘제일모직’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된 기회가 있었다. 1990년 미국에 사는 할머니가 같은 대학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전쟁 때 죽었다고 소문났던 외할머니가 월남했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것이다.

북한에 올 때 가져온 그의 짐 속에는 ‘제일모직’에서 만든 회색점퍼도 들어있었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그 점퍼를 선물했다. ‘미국에 사는 할머니를 찾았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교내에 퍼져 저마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캐주얼한 기성복을 차려 입은 그를 보고 학생들은 “로스안젤러스의 자랑이 이만저만 아닌데”하고 부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입은 점퍼의 주의사항에 붙은 라벨을 보던 친구들은 “어? 이거 남조선제로구나”고 깜짝 놀랐다. 라벨에는 ‘제일모직’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한글로 씌어진 것을 보면 분명 북한제는 아니고, 질을 봐도 중국연변산 저질도 아니었다. 깔끔하게 가공된 점퍼는 분명 남한 상품이었다.

“미국의 교민들도 남한에서 옷을 날라다 입는다”는 말을 듣고야 우리는 남한의 방직기술이 미국에 수출할 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그 점퍼는 이 학생, 저 학생에게 넘어가며 북한산 점퍼의 10배 이상의 최고가를 누리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남포, 신의주 등 큰 시장에서 미제(美製) 옷은 브랜드를 절반으로 찢어 팔고, 남한제품은 꺼내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제상품을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아무런 제약이 없다. 남한제품은 브랜드를 떼고 사고 팔 수 있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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